1985년 2·12 총선과 대통령 직선제
1985년 2·12 총선과 대통령 직선제
  • 영광21
  • 승인 2002.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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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1월30일 3차 해금에서 풀려난 구신민당 출신 전직의원들은 김대중·김영삼의 지원을 받아 2. 12일로 예정된 총선을 대비하기 위하여 신한민주당(약칭 신민당)을 창당했다. 신민당 창당을 계기로 민주세력의 결집이 가속화되었고, 투표일이 가까워지면서 '신당바람'이 증폭되었다.

국내에서는 김영삼이 죽음을 각오한 23일간의 단식으로 흩어진 야권을 결속했고, 국외에서는 당시 미국에 체류중인 김대중의 죽음을 각오한 귀국으로 민주화 세력을 결집·총선에 참여하여 지역구 총의석수 184석중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이 87석, 신민당 50석, 민주한국당 26석, 한국국민당 15석, 기타 6석으로 나타났다.

신민당은 창당한지 불과 25일만에 50석의 의석수를 가진 제1야당으로 부상하였고, 무소속을 제외하고도 야당의 지역구 의석수가 93석으로 어려운 정치상황에서 사실상 야권이 승리한 선거였다.

이후 신민당은 민한당 인사들의 대거 입당으로 거대야당으로 부상하였고, 이런 민중의 힘을 배경으로 국회가 열리자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강력히 요구하였고, 1987년 노태우의 6. 29선언으로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함으로써 우리나라 선거사에 있어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 선거였다.

직선제 관철로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는 한국정치사에서 가장 따스한 ‘정치적 봄’에 실시된 선거로써 군부의 권위주의 정권이 민중항쟁에 의해 굴복하고 여야가 합의한 경쟁규칙에 의한 최초의 게임이었다.

민주화 과정에서 동반자였던 김영삼과김대중은 국민의 여망이었던 후보단일화에 실패하고 각자 출마하여 1노3김(노태우〈36.6%〉,김영삼〈28.0%〉,김대중〈27.1%〉,김종필〈8.1%〉)중 지역대결에서유리한 노태우가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