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시절 마음의 여유 없었지만 긍지 느껴”
“공직시절 마음의 여유 없었지만 긍지 느껴”
  • 영광21
  • 승인 2012.11.0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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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영 / 전 영광6·25참전경찰 국가유공자회장

영광에서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군청·교육청·우체국 직원인지를 모를 정도로 20년 이상을 사복경찰로서 현장을 열심히 뛰어다닌 김규영(88) 전 영광6·25참전경찰 국가유공자회장.

강진군이 고향인 김 전회장은 일제강점기 초등교육기관으로 해남군에 있던 공립심상소학교(현 북평초등학교)에서 6년간 공부하고 졸업했다.

그 뒤 경찰시험에 합격해 23세때인 1949년 첫 임지인 영광에서 정보과와 대공과를 겸해 10년동안 근무하다 1959년부터 해남, 나주, 광주를 거쳐 목포에서 12년간 근무했다.

47세되던 1973년 영광으로 다시 온 그는 정보과, 수사·형사계장을 거쳐 55세때인 1981년 12월 대공3계장으로 퇴임하며 33년4개월 동안의 열정을 바쳤던 경찰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6·25 동란으로 1950년 7월 염산면 봉남리에 온 공비 33명을 전멸시키고 이후 부산 범어사로 들어가 총경산하 대대 통신병으로서 UN군과 합류했다”며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된 뒤 1950년 10월에 다시 영광으로 왔다”고 생생한 기억을 들려준다.

또 “1951년 한 해에는 백수읍 구수산에서 300여명의 공비소탕작전에 참여하며 1953년 7월27일 휴전협이 성사되기 전인 1952년 5월까지 늘 출몰하던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했다”고.

그는 “두번째 영광으로 온 1973년부터는 형사계장을 맡아 절도·강도·살인범을 많이 잡았고 그간의 표창장도 100여장이 된다”며 “항상 마음을 못 놓고 긴장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힘들었다”고 근무 당시의 고충을 토로한다.

김 전회장은 “정년퇴임때 시말서 한번만 써도 받을 수 없다는 옥조근정훈장을 받았는데 경찰공무원으로서는 받기 힘든 대통령훈장이었다”며 근무 당시는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동안의 노고를 알아주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충효를 전하는 집’이란 의미의 충효전가忠孝傳家를 가훈으로 삼아 슬하에 3남1녀를 성장시킨 김 전회장은 영광6·25참전경찰 국가유공자회장, 충의회영광군지회장, 재향경우회영광군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이들 단체의 고문으로 2선에 물러나 있다.

평소에 음식을 골고루 잘 먹고 친구를 좋아해서 약주를 자주 마신다는 김 전회장은 6·25 당시 국군과 함께 전쟁에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운 경남, 전남·북 경찰 6,800명의 경찰승전탑이 완공된 경남 함안군에 가서 함께 작전을 펼쳤던 경찰로서 지난 10월26일 위령제에 참석하는 등 아들·며느리와 함께 살면서 생활하고 있다.

박은희 기자 blessto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