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의 보편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의 보편화
  • 영광21
  • 승인 2013.01.17 10: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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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반 이상이 월급을 받기위해 일을 한다는 기사가 종종 보도되고 있다.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적어도 반 이상인 점은 개인의 진정성과 개별성이 현실 사회속에서 유연하게 반영되지 못하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정리해고, 직장내 성추행과 폭력, 가해자는 처벌하지 않고 피해자가 사직하는 부조리한 모순들,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 각종 비리 의혹사건들과 같은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개인은 사회와 조화롭게 조율하는 일이 필요하지만 개인보다 사회나 단체, 직장이 상대적으로 강자이기 때문에 세상 속에서 개인은 무력감을 느끼기가 십상이라서 그런 것 같다. 즉 지켜줘야 할 개인의 공간을 존중하고 배려해 주는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먼저 자신과의 관계가 편안할 때 외부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국가가 개인에게 힘을 더 실어줌으로써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고 사회와도 조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실효성있는 정책들을 펼쳐야 누구나 자신의 길을 지속적으로 개척할 수 있는 안전망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21세기에 걸맞게 개인이 행복하게 성장하고 동시에 그들의 성과물이 사회와 국가의 발전에 공헌하는 새로운 균형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다수의 의견은 유전보다 환경에 의해서 인간의 삶이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열악한 환경적인 여건속에서도 자신의 방향성을 찾아 마음먹은 대로 헤쳐 나가는 것 또한 가능하기에 개인의 유전적인 차이도 간과할 수는 없다.

특히 타고난 기질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그러한 씨앗을 긍정적으로 키워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즉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고 호박이 줄긋는다고 수박 되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의 운명을 체념과 절망속에서 노력의 끈을 놓아버리는 무기력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본질을 외면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다. 도토리가 자라서 떡갈나무가 되듯이 무한히 만족하게 되는 방식으로 변형될 가능성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강점의 씨앗 안에 녹아있다.

이러한 유전적인 속성은 환경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경쟁의 의미를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만이 자신의 지위와 열매가 결정된다는 가치관을 고수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팽배해 있다.

아마도 남의 발전이 나의 행복을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타인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을 옹호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고방식일 수도 있다.

국가가 우연적으로 서로 다른 입장과 환경을 가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약점 아닌 약점(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을 보완하고 상쇄해 주어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한탄할 필요없이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선택을 넓혀 준다면 공공선이 살아 숨쉬고 전쟁이나 범죄 그리고 자살이 사라지는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원하는 꿈이 현실이 되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기 위해 애쓰는 어른들의 진심어린 배려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면 그들은 아름다운 심성을 가지도록 스스로가 노력하게 될 것이다.

“어른들의 모습을 본받아서 선한 의지는 그 자체로 완전한 가치를 지닌다”는 칸트의 말처럼 아이들이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세상에 마음을 열고 자발적으로 모범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내적 동기에 불을 붙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박 찬 석 / 본지 편집인 oneheart@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