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 고맙소! 많이들 먹고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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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광21
  • 승인 2013.07.1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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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들여 매월 난원서 ‘공옥진 밥차’ 운영하며 ‘엄마’를 추억한다

■ 공옥진 여사 1주기에 만난 외동딸 은희씨

7월9일은 지난해 타계한 고 공옥진 여사의 1주기였다. 우리에게는 ‘병신춤의 대가’, ‘영원한 광대’로 불리는 공옥진 여사를 ‘엄마’로 기억하는 공옥진 여사의 외동딸 김은희(65)씨를 만났다.

김은희씨는 1년째 영광지역의 사회복지법인 난원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는 ‘공옥진 밥차’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씨는 “처음에는 한번 두번 찾으려고 했던 것이 어르신들과 함께 하며 어느새 1년이 넘었다”며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어르신들에게 엄마 살아생전의 이야기를 듣게 돼 봉사가 단순한 봉사가 아닌 엄마를 만나러 오는 길이 됐다”고 말했다.

그녀가 난원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공옥진 여사가 생전에 난원과 쌓은 인연 덕분이다.
평소 노인복지에 관심이 많아 23년동안 광주지역에서 밥차를 운영하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 왔던 그녀는 그녀 대신 어머니의 손을 잡아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꼭 한달에 한번은 자비를 털어 찰밥을 지어와 어르신들에게 대접한다.

김씨는 “내가 엄마 곁에 없을 때 여윈 손을 대신 잡아줬을 사람들에게 엄마를 대신해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며 “봉사를 한다고 오지만 오히려 어르신들에게 ‘엄마와의 추억’을 전해들으며 선물을 받아 간다”고 말했다.


딸 김은희씨의 기억 속에 공옥진 여사는 가족보다 춤을 더 사랑한 예술인이었다. 살뜰하고 정답지 못한 엄마를 뒀던 딸은 외갓집에 맡겨져 외롭고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더욱 냉정했다. 공옥진 여사가 타계하자 냉정했던 딸은 서럽게 울었다. 너무나 억울해서 울었다.

김씨는 “젊은 시절 가족보다 예술을 사랑했던 엄마가 나이가 들어서 비로소 가족 품으로 왔는데 너무 빨리 돌아가셨다”며 “슬펐다기보다 너무 억울해서, 이제야 엄마가 가까이 왔는데 억울해서 울었다”고 눈물을 흘린다.

3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내고 60대 중반에 이른 딸은 이제야 조금씩 엄마를 이해하고 있다. 7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굴곡의 삶을 살아왔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어 어쩌면 당신 역시 ‘엄마의 사랑’을 어떻게 주는지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김씨는 “병원에 계실 때 목욕을 시키면 ‘내가 어째 너 하나를 낳아서 이런 대접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며 “그것이 평생 딸을 외롭게 뒀던 엄마의 미안한 마음을 담은 사과였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엄마는 딸에게 어려운 숙제를 남겼다. 생전에 거주하던 영광읍 교촌리 예술연구소를 보존하고 그녀의 예술세계를 기록하길 바랐던 공옥진 여사.

그러나 자금마련과 사후 관리문제 등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어 지금까지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누군가는 그녀의 예술세계를 높이 평가하고 누군가는 저평가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시대의 춤꾼이자 예술인이었던 공옥진 여사가 영광에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이서화 기자 lsh122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