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을 겪은 한글날에 대한 소회
우여곡절을 겪은 한글날에 대한 소회
  • 영광21
  • 승인 2013.10.1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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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은 훈민정음 곧 오늘의 한글을 창제해서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이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이다.
1926년에 음력 9월29일로 지정된 ‘가갸날’이 그 시초이며 1928년 ‘한글날’로 개칭됐다. 광복후 양력 10월9일로 확정됐으며 2006년부터 국경일로 지정됐다. 또한 세종어제世宗御製 서문과 한글의 제작 원리가 담긴 훈민정음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돼 있으며 이것은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한글날을 처음 제정한 것은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있던 1926년의 일이다. 조선어연구회 곧 오늘의 한글학회가 음력 9월29일)을 가갸날이라 하고 그날 서울 식도원에서 처음으로 기념식을 거행한 것이 시초이다. 이 해는 한글이 반포된지 8회갑인 480년이 되던 해였다.

당시는 우리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억압에 눌려서 위축돼 있던 때라 민족정신을 되살리고 북돋우기 위해 한글날을 제정해 기념하기로 했던 것이다. 음력 9월 마지막 날인 29일을 한글날로 정한 것은 세종실록 28년(1446) 9월조의 “이 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라고 한 기록을 근거로 한 것이며 이름을 가갸날이라 한 것은 그때는 아직 한글이라는 말이 보편화하지 않았고 한글을 ‘가갸거겨……, 나냐너녀……’ 하는 식으로 배울 때였기 때문이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언문, 반절, 가갸글 등으로 불러 오던 훈민정음을 1910년대에 주시경을 중심으로 한 국어 연구가들이 으뜸가는 글, 하나 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으로 지어서 쓰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 쓰임이 보편화되지 않았다.

그러던중 1940년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원본이 발견됐는데 서문에 “정통 11년 9월 상한正統 十一年 九月 上澣”에 정인지가 썼다고 기록돼 있어 훈민정음, 곧 한글을 반포한 날이 좀 더 확실하게 밝혀졌다.

한글날을 양력 10월9일로 확정한 것은 1945년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고 나서였다. 곧 ‘정통 11년 9월 상한’의 ‘9월 상한’을 9월 상순의 끝날인 음력 9월10일로 잡고 그것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9일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1946년에는 한글날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해 거국적인 기념행사를 했다. 1970년에는 대통령령으로 공포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서 관공서의 공식 공휴일이 됐다.

그러나 한글날은 한동안 법정공휴일의 지위를 잃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다. 1990년에 휴일이 많은 것은 산업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경제단체의 문제제기가 있어 법정공휴일 축소 문제가 논의됐고 그해 8월에 국무회의에서 한글날을 국군의 날과 더불어 법정공휴일에서 제외하기로 의결, 한글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됐다. 그렇지만 한글 관련 단체의 꾸준한 한글날 국경일 제정 운동의 결과로 2005년 12월29일에 국회에서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2006년부터 한글날이 국경일로 정해졌다.

더구나 한글날을 공휴일로 바꾸면 4조6천억원가량의 사회적 이익이 생긴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연합뉴스 기사를 보면 국민의 83.6%가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보였다고 한다.

우리 한글은 세계 최고의 글자이다. 전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글의 위대함과 탁월함을 말한다. 그만큼 우리는 한글을 가진 겨레임이 자랑스럽다. 그런데 우리가 세계인이 보기에 부끄러운 나라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한글을 기리는 한글날이 어렵게 국경일이 됐지만 공휴일에서는 빠져 있다가 어렵사리 공휴일이 된 것과 영어를 우선시하고 한글을 도외시하는 경향으로 반드시 되짚어볼 일이다.

 

 

 

박천석 / 본지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