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공복이 국민위에 군림하는 이상한 세상
국민의 공복이 국민위에 군림하는 이상한 세상
  • 영광21
  • 승인 2014.06.05 14: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은 격분하고 있지만 이 또한 다른 형태의 무관심으로 지나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조바심이 난다. 지난 세월호 사건에 대해 사람들의 지배적 반응은 격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누구에게 이 문제를 성토해야 하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하며 또 애원할 것인가.

요사이 황당한 화재사건이 줄줄이 이어져 무고한 생명도 여럿 잃어야 했다. 큰 불로 번지기 전에 소화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당직자들의 근무태만과 화재점검 소방당국의 문서행정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문제일 뿐 근본적인 예방이 될 수는 없다.
계속되는 사고 속에서 무기력하고 무능한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 된 기분이다. 대형참사와 사고들에 예민해야 할 감각들은 무던해지는 선택을 훨씬 빠르게 하고 있다. 오히려 그 자리에 없었던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는 자신을 거울에서 마주칠까 두렵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위험과 사고일 수 있겠지만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나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분노라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의 과정이 아닐까? 다음 위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누가 답을 해 줄 것인가 말이다. 이 질문과 성찰에서 가장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 정부이며 또한 언론이라고 본다.
KBS는 유병언 부자의 변장사진을 공개하고 112 신고전화를 줄 것을, MBC는 흰색 EF소나타를 찾아라, SBS는 거물 변호사가 검찰의 수사를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어 프랑스에 머무는 장녀 유섬나씨의 송환이 늦춰질 것으로 보도했다. 종편방송은 유병언 전회장의 도피에 함께 있었던 30대 여성, 최측근들이 여성인 까닭 등의 자극적인 주제로 시사프로의 주요질문을 이어갔다.

유씨 부자를 재판장에 세우고 그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을 묻고 손해배상 청구를 해서 피해자 보상부터 선체인양에 드는 모든 비용을 모두 받아내야 할 것은 분명히 해야 할 일이고 중요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논리에 빠져 있다는 정작 과적의 문제는 못보고 가라앉는 배를 그대로 두고 본 정부의 회피와 책임 기피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한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눈 감고 아웅하는 식으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쫓는 검찰의 추적 상황이 실시간 중계되는 모양새가 어디로 피해가라는 것을 일부러 가르쳐 주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에도 과적으로 배를 띄우고 있더라는 보도를 접했을 때 같은 문제가 발생할 때 어찌할 것인가에 대해 누가 답을 해 줄 것인가?

사고의 책임을 묻고 따지는 정치행위도 중요하지만 시스템적 안전장치를 만드는 정부의 태도에 대한 적극적인 문책을 요구하는 것은 마땅히 언론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말이다. 어떻게 해경이 물에 빠진 국민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있고, 어떻게 공무원들이 높으신 분의 의전행사를 챙기느라 시민들 구조작업을 내팽개칠 수 있으며, 어떻게 경찰이 사건의 책임자인 권력자는 감싸면서 피해자인 국민은 감시하고 미행하고 잡아 가두고 폭행할 수 있느냐고.

애초부터 한국의 공권력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며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정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고. 이 사실을 직시해야만 비로소 이해의 실마리가 풀린다. 어떻게 국민의 공복이라는 사람들이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있는지 말이다.

박 찬 석 / 본지 편집인
oneheart@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