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대표곡은 당연히 ‘임을 위한 행진곡’
5·18 민주화운동 대표곡은 당연히 ‘임을 위한 행진곡’
  • 영광21
  • 승인 2015.05.1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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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정부의 속내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선거철만 되면 대한민국을 이끈 두 바퀴가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이라며 웅변하더니, 저들은 결국 목숨 바쳐 민주주의를 지켜내고자 했던 민주화세력을 대놓고 부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5·18 민주화운동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이 명실상부한 5·18의 대표곡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신군부의 폭압과 부패한 정권에 맞서 ‘반정부’와 ‘반체제’를 외친 것이 잘못인가. 주지하다시피 프랑스 대혁명 당시 부패한 권력에 맞선 시위대에 의해 불려진 ‘라마르세예즈’는 현재 프랑스의 국가다.

그들이 이토록 폄훼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고 불리게 됐는지 저들이 모르진 않을 것이다.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마지막 날 전남도청에서 최후까지 저항하다 숨진 윤상원 열사와 1979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야학교사로 헌신하다 숨진 젊은 대학생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을 위한 축가로 헌정된 노래다.
그 가슴 뜨거운 곡의 의미가 암울했던 5공시절 대학생들과 노동자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에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대중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들이 시위를 할 때마다 목 놓아 이 노래를 불렀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혹자는 말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니었다면 5·18이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데모가는 곧 금지곡이던 시절이었다. 이른바 민중가요라고 불리던 노래들은 대학생과 노동자, 시민단체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철저히 탄압을 받았고 보수언론 등 정권의 나팔수들에 의해 빨갱이 노래로 왜곡됐다. 부끄럽지도 않은지 그렇게 덧칠된 이미지를 다시 그들 주장의 근거로 들이대고 있는 셈이다.
그래놓고선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워낙 강한 반대여론이 있다”는 식으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대체 저들이 무슨 근거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정신과 맞지 않다고 단정하는가. 저들에게 5·18 정신을 정의내릴 권한은 없다. 참혹하게 희생당하고 갖은 고초를 겪은 5·18 민주화 유공자들이 간절히 바라는데 왜 저들이 토끼눈을 하고 막아서는가.

저들이 의도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갈등을 조장해 분열을 획책하려는 것이다. 5·18은 민주화운동의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았지만 저들은 끊임없이 광주와 전라도라는 이름을 지목하며 고립시키고 비하해왔다. ‘그들의 임’이라는 도발적 문구에서 저들이 정작 따옴표를 치고 싶은 건 ‘임’이 아니라 ‘그들’인 것이다.
애국가가 그렇듯 이 노래 또한 저들의 말마따나 특정단체의 전유물일 수 없다.
5·18의 역사적 평가는 이미 끝났다. 초·중·고 교과서의 민주화운동 단원에 표제처럼 실려 있고 당시 희생된 분들과 이후 민주화운동을 하다 숨진 이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은 국립묘지로 승격된 지 이미 오래다. 몇 해전 영화 <화려한 휴가>와 <26년>이 개봉되며 이제 5·18은 우리 국민들에게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저들의 작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도리어 법원까지 가세해 집요하고 치졸하게 훼방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종편에 출연해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 고발당한 탈북자들을 법원이 무혐의 처리한 건 그 실례다. 그러면서 “5·18의 역사적, 법적 평가가 확립돼 있어 사회적 평가가 바뀌지 않는다”고 덧붙인 건 차라리 조롱이다.

박 찬 석 / 본지 편집인oneheart@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