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무성하고 실체는 어디에도 없는 민생
말만 무성하고 실체는 어디에도 없는 민생
  • 영광21
  • 승인 2015.12.03 1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일 TV에 비치던 ‘이념 편향의 역사를 국민통합의 역사로’라는 새누리당의 백보드는 하루아침에 ‘이제는 민생입니다’라는 백보드로 교체됐다. 규제개혁점검회의에 참석한 대통령이 “국민과 민생을 위한다는 말이 허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농성중인 야당에게 야유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다. 교과서 국정화라는 정쟁을 만든 장본인들이 확정고시가 끝나자마자 민생을 외면하지 말라며 야당을 몰아붙이는 책략은 구태의연하고 비열하다. 진정성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정권이 위기에 몰리거나 여야의 대립이 첨예화 될 때는 어김없이 민생카드를 꺼내 들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국민의 규탄의 소리가 높아지고 야당이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의 수위를 높이자 정쟁을 그만두고 민생을 돌보자고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국무총리는 담화문으로 경제회복의 불씨가 꺼진다고 야당을 압박했다. 새누리당도 다르지 않았다. 먹고 사는 문제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문제로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국회 복귀를 다그쳤다.
진상규명과 사과 요구로 시작된 야당의 투쟁은 정부와 여당의 거부로 이어진다. 야당은 거리로 나서지만 민생카드 압박에 투쟁을 접고 국회로 복귀한다. 국정원 대선개입은 올바로 규명되지 않았고 책임자 처벌은 물론 재발방지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의 비열한 프레임은 번번이 이겼고 국민들의 열망은 좌초됐다. 야당의 무능이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세월호 대참사도 놀랍도록 똑같은 길을 걸었다. 특별법 요구를 둘러싼 지루한 공방에 새누리당은 정치영역에 들어오지 말고 순수성을 지키라며 유가족을 몰아 세웠다.
7·30 재보선에 승리한 새누리당은 본격적인 출구전략을 택했다. 8월5일 이완구 전원내대표의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를 마비시키고 있다는 발언을 필두로 세월호를 볼모로 민생경제를 막아선 안된다는 김무성 대표의 압박이 이어졌다. 8월26일에는 최경환 부총리와 경제 장관들이 경제회복의 불씨가 꺼진다고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경제의 불씨가 꺼질 줄 모른다며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규명과 세월호 특별법을 무마시키고 정상화(?)시킨 국회는 민생 국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담뱃값 인상안을 통과시키고 서민 증세, 재벌감세 등 박근혜 정부의 친재벌 정책을 합리화시켜준 것도 새누리당이었다.
국민의 삶과 민생을 위기의 도피처나 출구전략 정도로 생각하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때문에 국민의 생활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내수경기가 갈수록 얼어붙은 것도 원인에 충실한 필연적 결과다.
정부는 각종 내리막길 지표가 쏟아질 때마다 세계경기 둔화를 탓하지만 그 주장이 신뢰를 얻으려면 불황에도 막대한 부를 쌓아가는 대기업과 재벌들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 3분기 소비심리-경제전망 세계 최악, 건강 만족도 삶의 질 OECD 국가중 또 꼴찌 등은 이제 그리 낯설지 않은 뉴스다. 박근혜 정부에서 민생은 없었다. 민생 장사만 있었을 뿐이다.
국정화 확정고시가 있고 나서 대통령은 규제완화를, 여당은 노동 경제 관련 법안 처리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규제가 경제의 걸림돌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은 틀렸다. 없애고 고쳐야 할 규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규제는 약자와 공공의 이익에 대한 보호 장치다. 무차별한 규제 철폐 주장은 동물원에 온갖 창살을 없애고 사자와 사슴, 토끼를 같이 살아가도록 하는 것과 같다.

박 찬 석 / 본지 편집인oneheart@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