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하지는 않았어도 마음은 풍족했어”
“넉넉하지는 않았어도 마음은 풍족했어”
  • 영광21
  • 승인 2018.06.1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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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희 어르신<군서면 마읍리>

“그때는 남의 땅에서 농사지으면서 없는 설움 다 겪고 힘들게 자식들 키웠어. 나 젊을 때 고생한 이야기하려면 밤을 새고도 모자라네.”
세상물정 모르던 스물다섯살에 7살 연상의 남편에게 시집와 한평생 행복하게 살아온 양현희(89) 어르신.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와서 시어머니께 살림을 배웠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듬직한 남편과 함께 9남매를 낳아서 키우며 도란도란 재미나게 살았다.
젊어서는 누에를 사육해 고치를 생산하는 양잠업을 했다. 남편은 농촌지도자로서 농업기술지원 보급 역할을 하는 1990년대 농촌지도자 선발자였다.
양 어르신은 “우리 남편은 직접 논에 들어가서 일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절 농업기술을 보급하는 상담소장 역할을 했었어.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열심히 살며 부족함 없이 아이들을 키웠네”라고 말한다.
먹을 것 하나, 입을 것 하나 변변치 않았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딸 셋 아들 여섯을 훌륭하게 키웠다. 가정을 위해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때는 보리밥도 없어서 못먹을 때도 많았어. 조밥, 쑥밥, 고구마밥…. 이것 저것 넣어서 배만 채우고 살았지. 논에서 시퍼런 보리 비어다가 삶아 먹은 일도 다분했네. 이제는 다 추억이야.”
부모의 고생과 정성을 아는지 양 어르신의 자식들은 모두 훌륭하게 자라 고생하며 살아온 세월들에 대해 보답했다.
“내 일생 자식들을 위해 살아온 것 후회하지 않도록 우리 자식들 모두 잘됐어. 서울 사는 아들은 경찰이 됐고 영광 사는 아들은 공무원도 있고 사업가도 있어. 사위들은 전부 은행에서 일하고 있어.”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훌륭히 커준 자식들과 모든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평생을 함께 해준 남편에게 항상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는 양 어르신.
20여년전 건강하던 남편이 노화로 먼저 세상을 떠나 지금은 홀로 살고 있지만 마을주민들과 자식들의 잦은 방문 덕분에 외로울 틈이 없다.
양 어르신은 매일 경로당에 나가 점심, 저녁을 먹으며 온종일 마을주민들과 함께 보낸다. 
“집에 있으면 나 혼자 뭐하겠어. 마을주민들이랑 함께 앉아서 이야기하고 얼굴 보는 것만 해도 좋아.”
매년 명절에는 자식들과 손자, 증손들까지 한 무더기로 찾아와 조용할 틈이 없다고 말하는 양 어르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증손들 볼 생각에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명절에는 30평 되는 우리 집이 꽉 차. 시끌시끌 사람 살맛나서 행복한 시간이지. 이제 내 나이에는 더 바랄 것도 없이 우리 손주, 증손들 모두 건강하게만 살기를 바라. 그 어떤 무엇보다도 건강이 최고랑게.”
변은진 기자 ej536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