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날까지 봉사하며 즐겁게 살고 싶어”
“남은 날까지 봉사하며 즐겁게 살고 싶어”
  • 영광21
  • 승인 2018.07.1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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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어르신 대마면 월산리

 

“열여덟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는데 그 이듬해에 6·25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어.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주변 이웃을 도와주게 됐는데 조그마한 도움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내 마음이 치유되는 걸 느꼈어.”
이정숙(87) 어르신은 대마면에서 봉사가로서 명성이 높다.
봉사와 본인의 삶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이정숙 어르신. 봉사하는 삶을 살아온지도 어느덧 50년이 넘었다.
삶 자체가 봉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80이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주변 이웃을 도우며 봉사의 삶을 펼치고 있다.
이정숙 어르신은 묘량면 삼효리에서 태어났다. 딸만 여섯인 딸부자 집에서 셋째로 태어나 언니, 동생들을 보살피며 살아왔다.
열여덟살에 6살 연상인 남편에게 시집와 고생길이 펼쳐졌다. 결혼 후 3년 뒤,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 6년간의 군생활을 보냈다. 둘 사이에서 아들을 낳은 지 6개월만의 일이었다.
“얼마나 막막했는지 몰라. 결혼하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서 친정을 돌봐야하는 상황이었는데 남편까지 6개월 된 아이를 두고 전쟁터에 가버렸으니.”
친정어머니를 모시며 갓난 아이를 혼자 힘으로 키워야 했던 그 막막했던 심정을 누르고 이 어르신은 열심히 일했다. 남의 개간지에서 일해주며 받은 삯으로 힘겹게 가정을 꾸려갔다.
“어느 날은 남편이 휴가를 받아왔어. 내 생각한다고 일이라도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에 휴가지를 두개를 내서 왔다가 헌병들한테 잡혀갔지. 우리 때는 전쟁을 겪어서 참 서러운 시절이었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이 군생활을 마치고 돌아오자 갓난 아이었던 아들은 어느덧 일곱살이 돼 있었다.
“아이가 일곱살이 돼버리니까 이제 더 낳지도 못했어. 그때는 자식들 많이 낳던 시절이었는데 우리는 귀하디 귀한 아들 하나밖에 없네.”
어르신의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은 부모가 고생한 세월을 알기에 그 누구보다 잘했다. 자식의 돌봄 아래서 지금은 노인정에서 어르신들과 하루하루를 보내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을주민들은 “이 양반이 젊어서도 부지런하고 착실해서 남의 일 도와주며 지금까지 사는 것이야. 지금 나이가 많아도 일찍와서 노인정 청소도 다하고 부지런해. 우리 동네서 봉사왕이야”라고 입을 모은다.
봉사하고 베푸는 것을 좋아해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 이 어르신. 지금도 몸이 아픈 주변 이웃의 밭일을 도와준다.
이 어르신은 “지금처럼만 살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이제 더 바랄 것도 없지만 하나뿐인 내 아들이 건강을 되찾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