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맑은 날, 구불구불한 마을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법성포여자경로당이 눈에 들어온다.
장수 어르신들이 많은 이곳 경로당에서도 특히 많은 연세를 자랑하는 김연임(96) 어르신. 공출을 피해 먼 섬마을에서 시집와 80 평생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공출이 있어서 마을에 젊은 처녀가 있으면 일본 군인이 잡아갔어. 그래서 16살에 1살 연상의 영감님을 만나 결혼했어. 젊은 적 고생은 말로 다 표현 못 해.”
일제강점기에서 6·25까지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김 어르신은 귀한 아들, 귀한 딸 한명씩을 낳아 길렀다.
“젊었을 적에는 전쟁이다 뭐다 고생이 참 많았어. 섬에서 살다 법성으로 왔는데 얼마 안 가 전쟁이 터져서 홍농 가마미까지 4살 갓난아기를 업고 피난을 갔어. 그래도 우리 가족은 큰 변고 없이 전쟁을 이겨냈어.”
전쟁이 끝났지만 가난은 끝나지 않았다. 장사며 농사며 안 해본 일이 없다는 김 어르신.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그래도 자식들 크는 보람으로 살았다. 하지만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살림이 좀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우리 영감님이 44살에 시름시름 앓다가 먼저 떠났어. 영감 없이 혼자서 자식들 키우려니 힘들었지. 많이는 못 가르쳤어도 밥은 안 굶기고 키웠으니 참 다행이야.”
고단했던 시절을 이겨내고 이제는 70이 넘은 효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손자, 손녀들까지 모두 장성해서 증손주까지 낳았다.
“아들하고 같이 살고 있고 딸은 하루에 한번씩 안부 전화해. 아들, 딸들이 모두 번듯하게 잘 커서 참 다행이야.”
다리가 아파 걷는 것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많은 연세에도 여러 곳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정정하다.
요즘에는 교회에 나가 말씀도 듣고 경로당에서 어르신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노후생활을 즐기고 있다.
“글은 못 읽어도 교회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성경공부도 하고 찬송도 읊어.”
큰 걱정거리 없이 사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는 김 어르신의 소원은 손주들이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는 것.
김 어르신은 “손주들도 같이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고 찬송도 읊었으면 좋겠는데 통 교회를 안 와. 그것 말고는 걱정이 없으니 크게 바라는 것은 없어”라고 말하며 웃는다.
김진영 기자 8jy@yg21.co.kr
김연임 어르신 / 법성면 법성리
저작권자 © 영광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