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6주년 기념 사랑을 담아 전하는 엄마의 편지
창간 16주년 기념 사랑을 담아 전하는 엄마의 편지
  • 영광21
  • 승인 2018.11.0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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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솔 / 군남면

군남면에 거주하는 박한솔씨는 지난 10월5일 둘째 아이 김태선군을 출산했다.
첫째 아이 김태윤군을 출산하며 응급수술까지 해야 했던 박 씨는 “행여나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무섭고 두려웠지만 아가를 위해 꾹 참고 견뎠어요”라고 얘기한다.
천사같은 아이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 두렵고 힘들었던 시간도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는 박 씨.
“영광산후조리원 간호사 선생님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시설도 좋고 1:1 케어가 가능해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녀는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쓴 손편지를 건넨다. 아직은 읽지 못하지만 앞으로도 틈틈이 편지를 쓸 계획이다.

둘째아들 단미(태명)에게
단미야 엄마야! 기회가 생겨서 편지를 쓰게 됐어! 엄마의 글 솜씨도 뽐낼 겸해서 말이지. 너에게 편지를 써줘도 아직 읽지 못할거야. 그래도 가끔은 우리 아들들을 위해 펜을 잡아보려 해.
10월5일 너와의 첫만남을 위해 영광종합병원 도착해서 초음파로 널 보는데 잘 노는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대견했고 한편으로는 두려웠어.
태윤이 형 때는 태동검사하다가 위험했었거든. 너도 혹시나 그럴까봐.
수술실 들어가기 전 아빠를 보는데 무섭고 두려움에 대성통곡을 했었지.
10월5일, 낮 12시12분 3.11㎏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 너. 엄마는 오후 1시에 회복실로 가게 됐지.
엄마의 수술통증보다 우리 단미가 안아프고 건강하게 태어났는지 너무 궁금했었단다.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의료진의 말에 안심하기고 하고 빨리 단미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단다.
태윤이 형 때보다 더 빨리 움직여서 너를 보고 싶어 했단다.
병실 들어서자마자 사진으로만 너를 보게 돼서 속상하고 그랬어.
수술하고 그 다음날 아픈 몸 이끌고 화장실이며 병실복도를 걸어다니려고 노력했어. ‘우리 단미는 얼마나 이쁠까’하고 말이야.
10월6일 신생아실 문을 통해서 너를 볼 수 있었는데 진짜 신기했어.
태윤이 형아 닮은 것도 있지만 형아보다 작게 태어난 것 같았어.
‘내가 잘 안아줄 수 있을까? 떨어트리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건 괜한 걱정이었어. 첫 모유수유할 때 기쁨은 말로 표현을 못했단다.
모유먹다 힘들어서 자고 있을 때 얼마나 사랑스러웠던지….
물론 지금은 단미의 모든 것을 사랑한단다! 너의 웃음을 지켜줄게!
엄마도 더욱더 노력할테니 우리 단미 아프지말고 건강히 쑥쑥 성장해주기 반다.
‘단미’라는 태명 뜻은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뜻이래.
어디가서든 어느 누구에게 사랑받는 단미가 되기 바란다!
엄마, 아빠, 태윤이 형아는 단미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사랑한단다. 우리 네식구 꽃길만 걸어보자.
사랑한다! 건강하자! 고마워! 행복하자!
2018년 10월14일 단미를 사랑하는 엄마

 

 


 

정현화 / 영광읍

영광읍에 거주하는 정현화씨는 16년전 겪었던 사고가 지금도 생생하다. 출산 한달전 끔찍한 교통사고를 겪었고 예정보다 일찍 둘째 아이 이지성군을 출산했다. 아이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던 현실에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는 정 씨.
다행히 아이는 기적처럼 힘든 시간을 이겨냈고 지금은 해룡중학교 학생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씩씩하고 바르게 성장했다.
대견하게 커준 아이가 고맙다는 현화씨는 사랑하는 마음을 편지에 담아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한다.

입추와 삼복더위도 지난 무더위의 끝자락에서 논밭의 곡식이 여물 들기 시작한 2003년 8월29일은 작은아들 지성이와의 첫 만남의 시작이었다.
신랑과 함께 큰아들을 데리고 농사를 짓던 시골집에 들렸다가 만삭의 몸으로 잠깐 운동하러 나갔다가 교통사고가 나고 말았다. 쿵~ 하는 순간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떴을 땐 진통과 함께 병원으로 이동중이었다.
출산예정일이 한달 넘게 남아서 무통제를 맞으며 진통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사고의 충격이 컸던지 응급수술을 해야만 했고 결국 35주만에 아이는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마취에서 깨었을 땐 아이는 이미 큰 병원으로 옮겨졌고 생사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됐다. 눈앞이 깜깜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이기에 힘을 내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손 놓고 울고만 있을 수 없었다.
언제 물릴지도 모를 젖이기에 한 모금이라도 먹여 보겠다는 엄마의 마음으로 젖몸살을 앓아 가면서도 모유를 짜서 얼리기를 반복했다.
며칠이 지나고서야 면회를 오라는 연락을 받고 급히 병원으로 갔다. 아이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땐 너무 무서워 차마 아이를 제대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간간히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듯 꼼지락 거리면서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각종 검사에 시달려야 했지만 그래도 살아 있다는게 정말이지 다행이구나 싶었다.
아이의 상태는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살아 있다는게 기적같이 느껴졌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한달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비로소 아이를 안아 볼 수 있었고 그렇게 퇴원을 할 수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고 아이는 점점 회복을 해서 유치원에도 다니고 초등학교에도 다니고 이제는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어느덧 고등학교 진학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렇게 커가는 아들을 보면 참 대견스럽기도 하고 옛날 생각하면 맘 아프기도 하고 잔소리 안하고 잘해줘야지 했다가도 자꾸 큰소리치게 되고 부딪히게 되고 그렇게 부모와 자식이란 인연으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겠지.
지성아~ 어려서부터 많이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지금 이렇게 잘 커주고 있는 지성이한테 엄마는 항상 감사하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인생에 있어서 공부가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학생으로서의 본분은 공부라는 핑계를 대가며 스트레스도 주고 야단도 치는 엄마이지만 지성이를 알기에 채찍과 당근을 주면서 옳은 길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앞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대학을 진학하고 엄마 곁을 떠나 사회인이 되겠지? 지금까지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거라고 엄마는 믿는다.
엄마는 항상 지성이 뒤에서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최선을 다 할테니까 지성이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지성이가 원하는 꿈을 향해 한발짝 더 성장해 나가길 바란다.
최고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지성이가 되었으면 좋겠고 너의 꿈을 위해 힘찬 박수 보내주고 그 꿈 너머의 꿈을 위해서도 항상 아낌없이 응원해 줄게! 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멋진 지성이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