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과 행복 가득한 우리 마을”
“화합과 행복 가득한 우리 마을”
  • 영광21
  • 승인 2019.05.10 1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4 - 백수읍 장산리

백수읍 장산리 마을청년회가 어르신들을 위한 특별한 잔치를 열었다. 장산리 1리, 2리, 3리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마을주민들은 식사와 함께 도란도란 담소를 나눈다. 화목한 웃음 속에 행복이 한가득이다.
상등, 월천, 하둔, 월계, 장동마을 등 5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진 백수읍 장산리(이장 이석신·김성헌·문영근)는 70가구에 10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살고 있다.
상등마을은 1780년 무렵 경남 김해에서 거주한 김 상이 과거시험에 실패하자 유랑생활을 하다 황토흙이 많고 배가 드나들어 교통편이 좋아 도자기 굽기에 뜻을 두고 입주해 마을이 형성됐다.
월천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갑경휴가 난을 피해 입주했고 마을 옆을 끼고 있는 장산천이 반달처럼 생겼다해 월천이라 칭했다.
하둔마을은 무오사화시 은둔생활을 하기 위해 서울에서 낙향하게 된 강계손이 입주해 마을이 형성됐고 원래 마을주변에 배가 닿아 배를 메는 자리가 있어 주계촌이라 했으며 그후 군사들의 기지로서 피마장이라 불렀다. 이후 말을 기를 수 있는 장소라 해서 1진이 상둔, 2진이 중둔, 3진이 하둔이라 해 지금에 이르렀다.

한가족 같은 화목한 우리마을
월계마을은 연안김씨가 조정에서 관직을 지내다 중상모략으로 신변에 위험이 있어 피신 중 이곳에 입주했는데 마을의 지세가 마치 달과 같고 마을을 두르고 있는 산맥이 달의 계수나무 모습과 유사하다해 월계라 칭했다.
장동제 인근에 위치한 장동마을은 본래 입용마을로 불렸으며 연안김씨가 임진왜란의 난을 피하기 위해 이곳에 입주했으며 마을 뒷산에 산봉우리가 8개 있으며 산세가 용의 형태처럼 생겼다해 입용이라 칭했다.
마을주민들은 늘 한가족같은 화목함으로 단단하게 이어져 있다. 마을청년회가 2년에 한번씩 큰 마을잔치를 연다.
또 해방이후 마을산업의 발전을 위해 주민들의 논밭을 함께 메고 풍년을 기원하며 기쁨을 나누던 행사가 지금도 이어져 산업계라는 마을 전통행사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마을주민들은 “우리 마을은 매일 점심식사도 함께 하고 마을잔치도 풍성하게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라며 “당산제와 같은 전통은 사라졌지만 주민들의 화합을 위한 큰 행사는 지금껏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장산리는 젊은 인구가 많아 늘 새로운 발전을 위해 고민한다. 20여명이 넘는 주민들이 청·장년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도 많아 일손이 부족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김행영 청·장년회장은 “장산리 주민들은 벼농사를 많이 짓고 특용작물은 적게 재배하는 편입니다”라며 “아직은 젊은 인구가 많지만 고령화로 연세 많은 어르신들도 많아 일손부족 문제해결이 가장 큰 고민입니다”라고 말한다.
 김진영 기자 8jy@yg21.co.kr

 

 

문영근(53) / 3리 이장

3리 마을은 매일 점심식사도 함께 하고 마을잔치도 풍성하게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당산제와 같은 전통은 사라졌지만 주민들의 화합을 위한 큰 행사는 지금껏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신일로(85) / 노인회장

마을청년회가 2년에 한번씩 큰 마을잔치를 열어.
또 해방이후 마을산업의 발전을 위해 주민들이 논밭을 함께 메고 풍년을 기원하며 기쁨을 나누던 행사가 지금도 이어져 산업계라는 마을 전통행사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

 

 

김행영(60) / 청·장년회장

장산리 주민들은 벼농사를 많이 짓고 특용작물은 적게 재배하는 편입니다.
아직은 젊은 인구가 많지만 고령화로 연세 많은 어르신들도 많아 일손부족 문제해결이 고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