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숲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영광읍신호준 가옥
대나무숲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영광읍신호준 가옥
  • 영광21
  • 승인 2019.06.07 16: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운치를 즐기며 눈이 호사를 누리는 고택으로의 여행은 늘 기대로 가득하다.
신호준 가옥을 찾아가기 위해 영광읍 입석리 원입석마을로 갔다. 마을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경로당과 정자이다.
신호준 가옥은 연건평 108평이라는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고택이니 당연히 마을에서 가장 잘 보이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대로에서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마을 위쪽 한적한 곳에 터를 잡고 있었다.
골목에서 자연스레 이어지는 담을 따라 집으로 다가가보니 키 큰 나무들과 힘차게 뻗어 올라 간 대나무들이 병풍처럼 집을 감싸안고 있어 여행자의 마음까지 품어주는 듯 했다.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조용함을 즐겼던 집주인의 모습이 그려지는 그림 같은 고택이다.
신호준 가옥은 영월신씨의 종가이다.
가옥의 구성은 안채를 비롯하여 사랑채, 사당, 곡간채, 진광채, 안측간채, 방아실채, 행랑채, 사랑측간채, 중문간채, 솟을대문간채로 총 11동이 있다.
명정 현판이 걸려있는 대문을 지나면 대문채 또는 행랑채라고 하는 조선시대 양반집 구조가 그대로 남아있다.
대문채는 주로 곳간과 광, 고방으로 사용됐으며 이에 붙어있는 행랑방은 솔거노비의 거처로 남자 청지기와 머슴들의 처소로 사용되었다. 솔거노비는 주로 주인과 같이 살거나 주인집 근처에 거주하면서 직접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비를 말한다.


먼저 사랑채로 가보자. 사랑채의 건축연대는 상량문에 숭정기원후4년 병진8월초라고 적혀있어 철종 7년에 지은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사랑채는 주로 집주인이 될 장손이 거처했으며 서로 안면이 있거나 지체 높은 손님이 머물기도 했다.
신호준 가옥의 사랑채 앞에는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위치에 정원을 정성들여 조성해 놓았다. 사랑채 각 방 뒤편에는 골방을 두어 일종의 저장 공간으로 사용했으며 천장에는 다락이 있다. 사랑채는 앞뒤로 마루를 둔 ‘一’자형 4칸의 집이다.
건물의 짜임새는 2고주 5량의 형태이며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사랑채 건물 기단의 상면에 팔각형의 화강암 세면대가 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말을 기르는 마구간인 마방과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집을 지을 때 제일 먼저 안채와 사랑채의 건물이 앉아있을 방향을 정하고 다른 건물들을 기능적으로 조화되도록 배치했다.
신호준 가옥의 안채와 사랑채의 건물 방향은 남동향이다. 대지는 크게 2단으로 윗단에는 안채를 중심으로 여자들의 공간을, 아랫단에는 사랑채를 중심으로 남자들의 공간을 두었다.
두 공간인 안채와 사랑채는 드나드는 문도 각각 달리하고 있는데 솟을삼문을 들어섰을 때 안채는 방앗간채로 사랑채 공간은 중문간채를 통하여 들어간다.
두 공간의 동선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는 이러한 2단 구조는 조선시대 양반주택의 일반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석축으로 경계를 두었고 계단을 만들어 제한된 구역에서만 서로 왕래할 수 있도록 했다.

안채 툇마루에 앉아보니 이곳에서 살아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숨을 쉬는 듯하다. 안채 구조는 중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ㄱ’자형 평면이다.
이 건물에서 정면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횡각이라고 하는데 풍수적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위한 구조이다.
안채는 가로 칸이 1고주 4량, 세로 칸은 3량이며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안채 역시 사랑채와 비슷한 시기인 철종 7년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사당은 안채 뒤쪽 대지의 우측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전형적인 양반집의 배치형식을 따르고 있다.
본래 안채 우측에 있었으나 신굉규의 아들인 휘상 대에 현재 위치로 옮겼다.
조선 초기에 영월신씨가 영광으로 이주해온 것은 신보안과 아들 신사구 부인의 고향이라는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을 전후로 신응순, 신응망을 배출하면서 영월신씨 가문이 유명해졌다.
이후 고종 29년에 신굉규가 명정되면서 현재의 건물 규모는 이때에 이르러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신호준 가옥은 문화재로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1988년 12월21일 전라남도 민속자료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됐다.
주소 / 영광읍 입석길1길 15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