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분별이 관건이다
공사 분별이 관건이다
  • 영광21
  • 승인 2021.01.0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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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편지 17 - 연재를 마치며
인상여를 오해했음을 깨달은 염파는 등에 가시나무를 진 채 인상여를 찾아와 진심으로 사죄했다. 여기서 ‘부형청죄負荊請罪’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했다. 
인상여를 오해했음을 깨달은 염파는 등에 가시나무를 진 채 인상여를 찾아와 진심으로 사죄했다. 여기서 ‘부형청죄負荊請罪’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했다. 

전설시대 요 임금과 순 임금은 태평성대를 이룬 성군으로 추앙받아 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시대를 마치 유토피아처럼 그리고 있다. 임금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고 하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역사서 《사기》속의 요·순 시대는 사뭇 다르다. 홍수가 나서 백성들이 큰 재해를 입고 나쁜 마을의 우두머리를 처형하는 등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임금에 대한 사마천司馬遷의 평가는 대단히 긍정적이다. 
그 재해가 두 임금 때문에 일어난 것도 아니고 또 두 임금은 백성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봉사했기 때문이다.

사마천이 특히 강조한 대목은 권력교체의 방식이었다. 요 임금의 뒤를 이은 순은 요의 아들이 아니었다. 요 임금에게는 단주라는 아들이 버젓이 있었지만 요 임금은 아들에게 자리를 넘기지 않았다. 
신하들의 추천을 받아 민간에서 순을 발탁해 오랫동안 후계자 교육을 시킨 다음 생전에 임금 자리를 넘겨주었다. 역사에는 이를 선양禪讓이라 해 가장 이상적인 권력교체 방식으로 높이 평가한다.
문제는 태자와 태자를 따르는 신하들이었다. 이들이 요 임금의 결정에 불만을 나타내자 요 임금은 다음과 같은 말로 단호하게 자신의 의지를 표시했다.
“내가 아들 단주에게 임금 자리를 넘기면 단주 한 사람에게는 이롭겠지만 천하가 손해를 본다. 내가 순에게 임금 자리를 넘기면 단주 한 사람은 손해를 보겠지만 천하가 이롭다.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 천하가 손해 볼 수 없다. 결코!”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 천하가 손해 볼 수 없다. 결코!’ 마지막 이 말이 가슴을 때리고 마음을 울린다. 사마천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자세, 마음가짐으로 ‘공사분별公私分別’을 맨 앞에 내세웠다.

전국시대 말 조趙나라는 이웃한 강대국 진秦나라의 잇단 공격으로 몹시 고단한 처지였다. 
이때 인상여藺相如라는 용기와 언변을 갖춘 인재가 나타나 외교무대에서 거듭 조나라와 왕의 위신을 세우는 활약을 펼쳤다. 혜문왕은 인상여를 파격적으로 승진시켜 벼슬로는 가장 높은 상경上卿 자리까지 올렸다.
조나라의 백전노장 염파廉頗는 인상여의 느닷없는 등장과 파격 승진이 영 못마땅했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자기보다 인상여가 갑자기 높은 자리에 올랐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더욱이 인상여가 세웠다는 공이 진정한 공로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염파는 인상여를 만나면 제대로 따지겠다며 별렀다. 
인상여는 이런 염파를 피해 다녔다. 심지어 아침 출근하다가 염파의 마차가 보이면 자신의 마차를 돌려 다른 길로 갔다. 당시 조나라의 수도였던 지금 중국의 하북성 한단시邯鄲市에는 당시 인상여가 마차를 돌렸다는 골목 ‘회차항回車巷’이 아직 남아 있다.
그러자 인상여의 식솔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벼슬도 높은 인상여가 염파를 피해 다니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이에 인상여는 식솔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 조나라의 상황이 풍전등화와 같은데 염파와 내가 싸우면 어찌 되겠는가? 호랑이 두 마리가 맞붙어 싸우면 둘 다 죽지 않으면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라의 급한 일이 먼저이고 사사로운 원한은 나중이다!”

이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웃통을 벗고 등에 가시나무를 짊어진 채 인상여를 찾아 자신이 오해했다며 사죄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생사를 같이 하는 사이가 되었다.  
인상여가 남긴 ‘나라의 급한 일이 먼저이고 사사로운 원한은 나중이다’라는 말이 또한 마음을 울린다.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그랬고 그리고 지금도 나라와 사회 그리고 조직을 병들게 만드는 가장 심각한 병폐의 뿌리는 무엇인가? 누가 뭐라 해도 나 하나의 이익과 내 패거리의 부와 권력을 위해 ‘공과 사’의 분별과 구분을 내팽개친 탐욕에 있지 않았나? 
이를 위해 음흉한 가면 속에 정체를 숨긴 채 민심을 조작하고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중상모략으로 상대를 해치고 개발을 핑계 삼아 나라 살림을 거덜 내고 조국산천을 망치고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을 서슴지 않았던 그 뒤에는 공과 사를 가릴 줄 모르는 탐욕이 자리 잡고 있지 않았던가? 
공심公心이란 무엇인가? 나 하나가 아닌 공공의 이익을 돌아볼 줄 아는 기본자세다. 

공직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이런 자세가 요구된다. 
그래야 세상이 좀 더 밝고 나은 쪽으로 움직인다. 그 힘이 바로 공심이다. 사마천이 자신의 피로 쓴 역사책 《사기》 첫 권에다 요 임금의 선양을 깊게 새긴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요 임금의 선양을 받은 순 임금 역시 백성들을 위해 홍수를 다스리는 큰일을 해낸 우 임금에게 임금 자리를 양보했다.


지난 넉달 동안 ‘사마천의 편지’를 읽어주신 영광21 독자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번 칼럼을 끝으로 연재를 마치고자 합니다. 
신축년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끝내 승리를 거두고 모두 웃는 얼굴로 왁자지껄 만나 축하드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지면을 통해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지면을 기꺼이 마련해준 <영광21>신문사와 넉달 동안 빠지지 읽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김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