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 갑신년 중추 칠산바다의 월식 ①
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 갑신년 중추 칠산바다의 월식 ①
  • 영광21
  • 승인 2021.03.2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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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이 울면 사람은 울부짖게 마련이다. 하늘 아래 땅이 울고, 땅 위의 사람이 울부짖으면 바다는 어쩔거나. 바다인들 어찌 피와 눈물을 흘리지 않으랴.
서기 1884년 갑신년. 그 해는 단기 4217년이었다. 조선왕조의 제26대 왕인 고종이 21년째 집권하던 해였다. 
그해 가을인 음력 10월17일,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가 우정국 즉, 우편이나 전신 따위의 통신을 맡던 관아의 완공을 축하하는 행사장에서 일으킨 정치적 사건이었다.
갑신정변은 실패했다. 청나라가 개입해 삼일천하로 막을 내렸다. 이후, 정변을 이끌었던 개화파는 일본으로 망명했다.
갑신정변이 일어나기 두달전인 갑신년 음력 8월17일. 중추절인 추석 명절 다다음 날이다. 이날 밤, 하늘에서는 월식月蝕이 일어났다. 밤하늘에 뜬 달을 개가 베어 먹는다는 월식이 보름날도 아닌 열이렛날 들었다.
음력 열이렛날 뜨는 달은 칠망七望이다. 보름을 넘어서 시커먼 밤하늘에 뜬 칠망의 크기와 낯빛은 보름달과 어금버금하다. 하지만 그 열이렛날 둥근달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가슴은 보름날과 사뭇 다르다.
갑신년 중추 칠망이 뜬 칠산바다. 전남 영광군 앞바다에 떠 있는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사산도, 오산도, 육산도, 칠산도 등 일곱개의 크고 작은 섬이 칠 뫼다. 이 칠 뫼가 발목을 담근 서해를 칠산바다라 부른다. 
칠산바다는 영광굴비의 주산지이자, 조기 파시波市의 본디 중심지다. 일곱개의 섬이 있으니 칠섬바다라 부르는 것이 이치에 맞으련만 예로부터 칠산바다라 불렀다. 그 내력은 특별한 전설 때문이다.
원래 칠산바다는 땅이었단다. 일곱 골엔 작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터를 잡고 있었다. 한 마을엔 마음씨 좋은 서 씨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나그네가 서씨 노인의 집에 들렀다. 서씨 노인은 생면부지의 그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했다.

그림-임해정 작가

 


“어르신,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대접을 잘 받았소이다.”
서씨 노인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 초가삼간을 떠나며 나그네가 한 말이다.
“으따, 사람 민망시럽게 어쩌그러시오. 사는 꼬라지가 변변치 않어 밥상에 올린 반찬도 부실허고 빈대 톡톡 튀는 오두막에서 하룻밤 새우잠을 주무시느라고 참 애를 먹었을텐디 지발 낯짝 뜨겁기 이러들 마시고 싸그 갈 길을 가셨으면 좋것고만이라우!”
서씨 노인이 이렇게 말하며 나그네의 등을 울 밖으로 떠밀었다. 
“저기 어르신!”
“으따 또 무신 염치없는 말씸을 허실라고 그러쇼?”
“이 칠산골이 말이오. 머지않아 바다가 될 터이니 하루라도 빨리 이 마을을 떠나시는 게 좋을 성 싶소이다.”
“무시 어쩌고 어쩌라우? 이 이 칠산골이 머어 머지않아 바다가 된다고라우?”
“그렇소이다.”
“언지쯤 바다가 되는디요?”
“저기 저 마을 뒷산 밑 돌부처가 말이오, 귀에서 피를 흘릴 때 이 칠산골은 바다가 될 것이오.”
나그네는 이런 말을 남기고 마을을 떠났다. 이후, 서씨 노인은 매일 아침 산밑에 찾아가서 돌부처의 귀에서 피가 나오는지 살폈다.
서씨 노인이 나그네가 남기고 간 예언을 얘기하며 매일 아침이면 산밑 돌부처의 귀를 살피자 마을 사람들은 서 씨 노인을 미친 사람 취급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개를 잡고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백정이 산밑 돌부처를 찾아갔다. 백정은 돌부처의 귀에 손에 묻은 개의 피를 발랐다. 마을 사람 그 누구도 모르게 말이다.
이튿날 서씨 노인은 돌부처의 귀에 묻은 피를 보았다. 부리나케 마을로 내려와서 소리쳤다.
“으따, 일났네 일났어! 산밑 돌부처가 피를 흘렸으니 인자 이 칠산골이 바다가 되게 생겼고만 그려! 얼렁들 처자식 뎃고 마을 뒷산으로 피신을 혀야 쓰것고만!….”
서씨 노인은 마을 고샅을 돌며 이렇게 외쳤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단 한 사람만이 서 씨 노인의 말을 들었는데, 그 사람은 공교롭게도 그날 마을에 들른 소금장수였다.
소금장수는 소금지게를 지고 서씨 노인을 따라 마을 뒷산으로 올랐다. 한참 뒤, 천둥과 번개가 쳤다.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바닷물이 밀려들더니 순식간에 마을을 집어삼켰다. 
마을 뒷산 꼭데기까지 차오른 바닷물은 소금장수가 소금지게를 받쳐 둔 작대기 밑에서 잠잠해졌다. 서 씨 노인과 소금장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둘러보니, 칠산골의 일곱 산봉우리는 바다에 둥둥 떴다.                                   
(계속)


연재를 시작하며 …

서주원 작가가 펼치는 근현대 향토 대하소설      우리나라 해양문화의 보고 ‘파시波市’. 파시는 ‘그 옛날 바다 위에서 열리던 생선 시장’을 말합니다.
파시의 본거지는 영광굴비의 주산지 칠산바다. 그 중심지는 영광군 법성포와 전북 부안군 위도입니다.  방송작가이자 소설가인 서주원 작가가 집필할 대하소설 <파시>. 2021년 3월25일부터 격주 1회 연재합니다. 
시대적 배경은 갑신정변의 해인 1884년부터 6·25한국전쟁 종료 이듬해인 1954년까지 70년 동안 이어진 질곡의 근대사입니다. 공간적 배경은 칠산바다, 흑산도, 연평도 등을 포함한 서·남해입니다. 갯가에 황토가 닿는 전라도 내륙지방도 포함됩니다. 멀리는 중국과 일본 등 외국도 곁들여집니다. 
개항기 이후, 이 땅의 어부들 역시 역사의 격랑을 스스로 헤치며 망국의 한과 분단의 아픔을 견뎠습니다. 불굴의 의지와 강인한 생명력으로 우리의 바다를 지키며,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어 봉건적 질서에 저항도 했습니다. 조국의 독립도 거들고, 국토의 분단도 막으려 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만신의 외아들 천귀태. 1884년 한 여름 위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와 그의 핏줄은 동학농민혁명, 일제강점기, 8·15해방과 미군정기, 6·25한국전쟁 등을 겪게 됩니다. 
‘인생이라는 작은 배’는 망망대해에 뜬 일엽편주나 진배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이 땅에 태어난 어부들은 자연과 세상의 높디높은 파도를 수시로 넘습니다. 
대하소설 <파시>는 풍진 세상살이 속에서도 희망가를 부르며 살다간 선대 어부들의 위대한 인간 의지도 엮어냅니다. 삶·꿈·생존·생명의 터전인 바다의 소중함도 보여 줍니다. 아울러 역사의 뒤안길에 방치된 갯가 민초들의 아리랑도 기록합니다. 
연재는 농업경제신문과 동시 게재됩니다.

 

■ 작가 소개

서주원 작가는 1965년 전북 부안군 위도에서 태어났다.
위도중학교를 졸업한 뒤, 전주에 있는 상산고등학교 진학해 1회 졸업생으로 성균관대학교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으로 KBS TV와 라디오, 국악방송, 국방FM, 교통방송 등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일요신문, 전라매일 등 언론사에 잠시 몸을 담았다.
고구려문화연구회 회장, 독도문화연대 사무총장, 아리랑포럼 대표 등을 맡아 중국의 동북공정과 문화공정 그리고 일본의 독도침탈 맘동에 대응했다. 1993년 10월 고향 위도에서는 서해훼리호 참사가 발생해 유가족들과 배상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2003년 부안반핵운동 때는 위도방폐장 반대투쟁에 나섰다. 
부안반핵운동을 다룬 장편소설 <봉기>, 고 노무현 대통령의 생애 마지막 하룻밤을 다룬 실록정치소설 <봉하노송의 절명> 등을 출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