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인생은 길다
인생은 짧고 인생은 길다
  • 영광21
  • 승인 2007.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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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용인의 난과의 만남 22 - 흥선대원군과 대원왕
우리나라는 팔만대장경이 세상에 나옴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10월11일을 책의 날로 정했다.
6세기경 공자가 엮어낸 <시경>에는 소나무(松) 측백(柏) 대나무(竹) 매화(梅) 복숭아(桃) 버드나무(柳)를 비롯해 수많은 식물들이 등장한다. 공자의 언행과 그 제자들의 행적을 역은 <공자가어>나 <예기>에서는 난이 반드시 고귀한 물건이거나 덕행의 상징으로 돼있다.

요즘 난을 기르는 사람치고 공자의 의란조( 蘭操)에 얽힌 얘기쯤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공자는 위나라로부터 제후로 초빙되었으나 출사하지 못하고 고국인 노나라로 돌아오던 길에 은곡이란 고을 입구에서 수레를 멈추고 쉬다가 나무 밑에 홀로 피어 향기를 선사하는 난초를 보고 깊이 탄식해 말하기를

'무릇 난초란 마땅히 왕자향(王者香)이라 하겠거늘 지금은 잡풀과 더불어 함께 지내면서 홀로 아름답구나'하고 거문고를 내어 탄주하면서 자신이 때를 만나지 못했음을 잡초 속의 난에 비유해 의란조라는 금곡(琴曲)을 지었다는 고사이다.

공자는 '난이 깊은 산골짝에서 난들 사람이 없다해서 향기를 발하지 않으며, 군자(君子)가 역경에 처했다해서 절개를 바꾸겠는가?(芝蘭生於深林 不以無人而不芳)'라고 읊어 난을 군자와 대등한 반열에 올리기도 했다.

행서로 유명한 흥선대원군을 아는 분은 많으나 대원왕(大院王)을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음을 본다. 자는 시백, 호는 석파, 시호는 헌의인 이하응은 1820년 영조의 고손자인 남연군의 넷째 아들로 당시 임금이던 철종에게 아들이 없자 신정왕후 조씨를 부추겨 아들 명복(고종의 아명)을 왕위에 오르게 한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세도가 안동김씨 세력축출, 47개 서원을 제외한 모든 서원 철폐, 육전조례와 대전회통을 펴내 법률제도확립, 경복궁 개축, 프랑스 함대를 물리쳐 병인양요, 미국 함대를 물리친 신미양요로 천도교도에 대한 무차별 박해와 쇄국정책, 최익현의 탄핵을 받아 운현궁으로 은퇴했으나 임오군란으로 다시 정권을 잡았다가 명성황후의 책동으로 청나라에 잡혀간다.

1887년 청나라의 위안스카이와 결탁해 고종을 폐위시키고 장남 재황을 옹립 재집권하려다 실패했다. 1895년 일본의 책략으로 다시 정권을 장악하지만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은퇴하는 등 파란만장한 권력의 곡예를 벌였던 대원군은 정권을 내놓고 은퇴한 1907년(광무11년) 대원왕(大院王)에 추봉(追封)되었다.

흥선대원군의 행서(行書)와 난초 그림은 최고의 경지라는데 현존하는 진품이 손가락 꼽을 정도로 귀하다. 얼마전 공개된 흥선대원군이 그렸다는 묵란화첩인 석파도인유란도(石坡道人幽蘭圖)는 가로 30㎝, 세로 70㎝, 두께 3㎝, 전체 10권으로 난초 그림 108점이 담겨 있는데 이 작품이 진품이라면 국보급 문화재로 전혀 손색이 없다고들 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