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애국충정에서 피어난 당산제

안마도 산봉

2003-05-09     영광21
지금으로부터 약 220년전(1780년) 낙월면 안마도 동촌마을에 살았던 신씨 할머니의 꿈에 "나는 나라 장군인데 한번도 출전을 못해서 이곳 북쪽 산너머(현 당너머) 선창가에 와 있으니, 나를 이곳 산봉우리에 묻고 매년 설날이면 농악을 쳐 제를 지내 달라"고 했다.

이상한 꿈에서 깨어난 신씨 할머니는 이 사실을 동네 사람들에게 알렸다. 이 말을 들은 동네사람들이 그곳으로 가 보았더니 선창가에 이상한 상자 하나가 있었다. 그 속에는 1m이상 되는 긴 여자 머리털과 큰 주머니(중국 주화가 들어 있었음)와 철마(鐵馬) 2필(큰 주먹 보다 조금 큰) 등이 있었다.

동네사람들은 신씨 할머니의 꿈을 쫓아 산봉우리에다 큰 항아리를 땅에 묻고 이 상자를 넣어 두었다. 또 주위에 동백나무를 심고 당산봉우리라 이름하였다. 해마다 설날에는 이곳 섬 주민들은 안마도 동촌마을을 큰 아들, 신기마을을 둘째아들, 월촌마을을 막내딸로 정해 이 마을의 액운과 재앙을 없애 달라고 지성으로 빌었다.

이때 당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상징으로 큰 대통나무 2개(길이가 50m, 반지름 6cm, 가로 12m)에 동배나무가 잎을 꽂은 다음, 흰 광목천으로 대통나무 전체를 감아내리고 천 끝에는 긴 머리털과 큰 주머니를 단다. 이 대통나무를 모시는 사람은 대나무 하나에 2명씩 4명인데, 목욕재계하고 제사를 주관하게 된다.

제물로는 깨끗한 집의 숫소를 잡아 올린다. 매 끼니마다 밥을 차려 놓고 농악으로 제를 지낸다.옛날에 당산봉우리쪽에다 소변을 하거나 침을 뱉으면, 성기와 입술이 부었다고 한다. 한번은 송이도 사람들이 배를 타고 철마를 당산봉우리에서 훔쳐가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움직이지 않자, 당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노여움을 사서 그런다고 뉘우치고 제자리로 갖다 놓았다 한다.

이러한 당제사는 1968년까지 이어 왔으나, 당봉우리에 해군기지가 1969년 설치되면서부터 제를 지낼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안마도는 정월과 6월, 연 2회에 걸쳐 동촌, 신기, 월촌 주민들이 주가 되어 산제와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