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동영상 봤어?"

[주장]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도덕성

2007-12-17     영광21
"이명박 동영상 봤어?" BBK를 직접 설립했다는 이명박 후보의 광운대 특강 동영상이 공개된 이후 만나는 사람들마다 서로 묻는 말이다. 뜻밖이다. 원더걸스나 소녀시대가 아니라 이명박 후보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 송년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끝난 줄 알았던 대선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5일 검찰의 BBK 관련 발표와 동시에 이번 대선은 끝이 났었다. 후보들은 전국을 누비며 목이 터져라 지지를 호소했지만 귀 담아 듣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대선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고, 더 이상 재미없는 대선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 후보의 단일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관심 대신 냉소를 보냈다. 좁쌀 아무리 굴러도 호박 한 번 구르는 것만 못하다면서.

하지만 16일 공개된 동영상은 사람들에게 지금이 대선 기간이라는 걸 일깨워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직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미 정해진 결과를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느냐고 하던 이들도, 바꿀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바꿔야 마땅한 게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명박 동영상이 그렇게 만들었다.

사실 그 동안 이명박 후보의 독주의 원인은 그가 '경제'라는 화두를 선점한 까닭이었다. 상대 후보가 사람이니 가족이니 평화니 할 때, 이명박 후보는 경제를 이야기 했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예전에 대기업 회장을 해 봐서 경제를 잘 안다고 했다. 대통령이 되면 외국에 있는 친구들이 돈 싸들고 와서 투자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죽었던 경제가 곧 살아날 것처럼 느껴졌다.

참여정부는 국민소득 2만불 시대라고도 하고, 종합주가 지수가 지난 5년 동안 몇 배가 올랐으며, 각종 경기지표가 개선되었다며 경제가 죽은 게 아니라고 강변한다. 소용없는 일이다. 서민들이 실제 느끼는 경기가 바닥이라는데 그깟 경제지표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민심은 곧 천심이다.

전문가들이 나서서 이명박 후보의 경제관련 공약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이야기 해도 아무도 듣질 않는다. 공약대로 추진하는 게 우리 경제에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해도 콧방귀만 뀔 뿐이다. 자수성가한 대기업 회장 출신의 대통령이 지금의 무능한 집권세력보다야 낫지 않겠냐는 믿음이 더 확고하기 때문이다.

"도덕성 보고 이명박 지지하는 게 아니거든."
그 동안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그의 위장전입, 자녀들의 위장취업, BBK 관련 사건 등 각종 의혹 등을 이야기 하면 하나같이 했던 말이다. 이명박 후보의 여성비하 발언이나 장애인에 대한 모욕 등도 지지자들의 결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명박을 지지한다는 이들 중 이명박의 도덕성을 이유로 꼽는 사람은 없었다.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도덕성 따위에는 얼마든지 관대할 수 있다는 자세였다.

이제껏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에 관대했던 이들이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을 몰랐던 건 아니다. 위장전입은 자녀 교육 때문이라고 여기고 이해해 주었고, 여성 비하 발언은 본 뜻은 그게 아니었을 거라며 넘겼다. 자녀 위장 취업이나 소유하고 있는 건물에 퇴폐업소를 받아들인 일도 바쁜 가운데 챙기지 못해 생긴 일로 이해하고 넘어 갔다.

땅 문제도, 위증 교사 문제도, BBK 문제도 검찰이 아니라고 하니 새로운 의혹들이 쏟아져 나와도 이명박 후보의 말만 받아 들였다. 경제를 살린다는데 그 정도 눈 감아 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미국에서 건너 온 이 구호 때문에 경제가 아닌 다른 문제로 시비를 거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인 양 여기며 그냥 눈 감아 온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이명박 동영상은 도덕성에 대해 관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넘겨 버렸다. 이명박 의혹을 이야기 하면 '도덕성이 문제가 아니거든' 이라고 했던 이들이 '이명박 동영상 봤어?'라고 묻기 시작했다.

자신은 BBK와 관련이 없으며, 김경준에게 사기를 당했을 뿐이며, 관련 자료는 모두 조작되었다고 했던 이명박 후보가 아닌가. BBK 주가조작과 관련이 있으면 대통령이 된 후에라도 무한책임을 지겠다고도 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그가 직접 화면에 등장해 스스로 BBK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수익을 자랑하고 있으니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기가 막힐 노릇임에는 분명하다. 도덕성 때문에 대통령 후보를 정하는 건 아니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이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도덕성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명박 후보가 경제를 살릴 후보인지 아닌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만큼은 국민 모두가 눈으로 확인했다. 이제 이틀 후면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선택은 단지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느냐에 그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느냐 아니냐 하는 걸 판단하는 일이기도 하다.

투표소에서 만나자. 아직 대선은 끝나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이봉렬 기자(soln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