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씻는 구슬땀과 사랑의 봉사

2007-12-27     영광21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하다가 얼마전 기름유출 사고로 신음하고 있는 태안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되었다.

비록 나의 힘이 아주 작지만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주민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나눠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도착한 태안은 방송을 통해 듣고 본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였다.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는 가히 우리 생태계가 당한 최악의 인재에 해당되었다.

마을은 입구에서부터 기름냄새가 진동하고, 갯벌은 죽음의 늪이 되고, 양식장에선 악취가 풍기며, 모래사장은 시커먼 기름으로 덮인 채 신음하고 있었다.

경제적 손실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바다가 삶의 터전인 주민들의 가슴은 시커멓게 탈 수밖에 없어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아주 거대한 힘을 갖게 되었으나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은 자라지 않아 이런 사고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원인과 책임을 따질 때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기름제거가 급선무라고 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름 덩어리가 멀리 퍼지고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피해와 복구시간을 그만큼 늘리고 있다.

이런 사고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방재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기껏 기름막에 울타리를 치고 유화제를 뿌리지만 한계와 부작용이 크다고 한다. 결국 사람이 손으로 기름 덩어리를 일일이 건져내고 모래와 돌에 묻은 기름을 닦아낼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그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봉사의 손길을 내밀었다. 여러 단체 회원들과 개인들이 앞 다투어 찾아가 기름을 닦아내고 기름 덩어리를 건져 올리고 있다. 그 덕으로 복구가 예상보다 빨리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방재 지원을 위해 현지에 도착한 미국 연안경비대원들도 빠른 기름 제거에 놀라고 있다.

10년 전 일본의 미쿠니 사고에선 바다에 쏟아진 기름을 30만 명의 봉사자가 석 달 만에 치우고 모두 닦아낸 적이 있다. 이번에 태안에서 새어나온 기름은 미쿠니의 것보다 배가 넘기 때문에 하루 2만 명이 1년 간 작업해야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하루 2만 명 이상이 애를 쓰고 주말에는 근 4만 명이 찾아가 그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다니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번에는 씨프린스호 기름유출이라는 비슷한 사고를 겪은 여수 시민들과 소말리아 피랍 선원들까지 참여해 소중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자신들이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랑이 사랑을 낳고 있는 가슴 뭉클하고 위대한 광경이다. 그만큼 봉사는 번식력이 강한 것이다. 인정이 훈훈한 선진 사회는 이렇게 해서 이뤄진다. 결국 우리 모두가 그 덕을 볼 것이므로 사랑의 봉사는 그 무엇보다도 훌륭한 보험이며 효율적인 투자인 것이다.

지금의 이 열기가 계속 유지돼야 할 것이고 분명히 유지될 것으로 기대한다. IMF 때 금을 모았던 그 마음으로 죽은 바다를 다시 살리고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만일 몸으로 못하면 성금이라도 보내 이 아픔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한평생을 살면서 건강과 돈을 이렇게 가치 있고 멋지게 쓸 수 있는 기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자신들만 편하자고 만들어낸 온갖 기술 속에 숨겨진 엄청난 파괴력에 대해 재인식하는 기회로 삼고, 우리의 고질병인 안전불감증을 반드시 고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