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삶에 최선 다해야죠”

2009-03-06     박은정
개구리가 땅속에서 겨울잠을 깨고 나온다는 경칩이다. 그런데도 겨울은 미련을 못 버리고 남아 봄을 시샘하며 들판을 하얀 눈으로 뒤덮었다.
봄의 초입에서 찾아간 송이도. 해수욕장을 장식한 동글동글한 흰 조약돌이 푸른 바닷빛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내는 이곳에서 다소곳한 김해자(55)씨를 만났다.
마침 닥친 시할아버지의 제사준비로 분주한 그는 송이도에서 약간 떨어진 섬, 각이도가 고향이다.

20대 중반 과일중매인을 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해 서울에서 생활하던 그는 남편의 사업실패로 10년전 낙향했다.
“서울에서 사기를 당해 모든 재산을 잃고 오갈 때가 없어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처음에는 살집도 없고 마을주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 등 마음 붙이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라고 곤경에 처했던 지난 시절을 밝히는 김 씨.

그는 이처럼 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중풍과 치매에 걸려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봉양했고 엎친 데 겹친 격으로 남편마저 위암에 걸려 병마와 싸우는 시련을 맞는 등 인고의 나날이 한없이 이어졌다.

특히 김 씨의 시어머니는 일찍이 혼자돼 다시 재혼을 했지만 재가한 곳의 자녀들과 맞지 않아 병을 얻어 돌아왔음에도 불평불만없이 정성을 다해 주변을 감동시키고 있다.
마을의 한 주민은 “도시에서 살다 내려와 본인 살기도 힘들텐데 다른 곳으로 시집갔다 돌아온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친 딸처럼 모시기가 어디 쉬운일인감”이라며 김 씨의 지고지순한 마음을 칭찬했다.

김 씨는 귀향초기 낯설움과 냉대를 극복하고 농사를 지으며 안정을 되찾고 있다. 또 5년전 위암수술을 받았던 그의 남편도 건강을 회복해 어업에 종사하며 이장을 맡아 마을화합에 앞장서고 있다.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돼 지금은 영광에 있는 요양원에 모시고 있습니다”라며 죄송한 마음을 드러내는 김 씨.
그는 “어머니는 참 좋은 분이신데 평생을 고생만 하셔서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든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재가 하셔서 그곳에도 자녀를 두셨지만 제가 큰 며느리로서 당연히 어머니를 모시고 집안 애·경사를 챙겨야지요”라며 어머니에 대한 가여움을 밝혔다.
김 씨는 어렵고 불편한 도서생활 속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효를 다하고 이웃과 따뜻한 정을 나누며 인보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또 외롭게 살아가는 마을 어르신들에게도 간식과 식량을 전달하는 등 경로효친사상을 몸소 실천해 주위에 귀감이 되고 있다.
“봄을 맞이하며 만난 당신의 행복한 나날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