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명절문화의 문제점
과시·허례허식으로 낭비 초래
2002-09-28 영광21
●가사노동 분담 불균형의 문제
명절에 모이는 가족은 3대가 대부분이고 모이는 인원은 적게는 20명에서 많게는 100명인 집도 있으며 평균 40명 내외가 모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절 준비를 위해 기혼주부는 대부분 2일 전에 시댁에 가서 장보기를 시작하고 명절 준비를 한다. 이 중 명절을 주관하는 시어머니는 일주일 전부터 김치를 담그는 등 사전 준비 차원의 가사노동이 시작된다.
당일에는 제상 차리기, 산소방문, 다과상, 점심, 손님상 또는 인사가는 경우 음식싸기, 다과상, 저녁식사로 이어지는데 전후 하루씩을 더 하면 적어도 40명분 식사를 9끼 준비해야 한다. 종가집의 경우 새벽의 차례상에서부터 시작해 오후 3시까지 상차림·설거지를 반복해야 했으며 여자들은 점심먹을 시간도 없어 부엌에 서서 먹어야 한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른들 상, 남자들 상, 아이들 상까지 신경 쓰다보면 여자들은 아이들이 남긴 밥상에서 대충 때우는 명절밥을 먹게 된다.
음식관련 가사노동은 대부분 여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시어머니나 맏며느리가 사전 준비 노동을 많이 한 경우는 가사 노동의 여성전담에 불만을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특히 맞벌이가 증가함에 따라 취업며느리는 다른 며느리나 다른 집 며느리와 비교할 때 미안한 마음에 더욱 할 말이 없어져 가사노동의 문제점이 표면화되기 어렵다.
많은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명절하면 떠오르는 것으로 '여자들은 죽어라 음식장만하고 차려내고 남자들은 배터지게 먹고 자고 놀고 여자들은 명절 수 2일 정도 몸져눕는 것'이라니 가사노동의 중압 정도를 알 수 있다. 올해 여성부가 실시한 여성의 삶과 일에 대한 국민 체감의식 조사에서도 가사노동이 최대의 걸림돌로 꼽혔다. 명절은 이런 일상적 문화가 단기간에 집약 강화돼 나타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명절 의례에서의 성차별
집안 풍속에 따라 다르지만 다수가 산소 성묘와 음복은 남자들만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른뿐이 아니다. 제사 참례를 통해 남자 여자아이들이 성차별을 경험하고 남자아이들이 심리적인 우월감이나 가계에 대한 부담감을 갖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처럼 온가족이 즐겁자고 만난 명절에 성차별을 경험하고 속상하고 참담한 심경을 맛보는 사례가 적지 않다.
명절 의례는 대가족제도가 많이 사라진 지금도 남아있는 남성중심적 의례행위로 명절은 남성중심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전수, 잔존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과시 허례허식 낭비의 문제점
신분사회에서 가부장제의 확산 강화의 산물이었던 가문이니, 집안이니 하는 의식이 아직도 윗세대에는 많이 남아있다. 지방으로 갈수록 더 심하다. 이는 며느리에 대한 과시용인 동시에 우월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명절에 많은 사람이 출입하고 또 여기저기 인사가야 할 곳이 많은 것이 양반가문 또는 명문가인 것으로 여겨 실수요 이상의 음식장만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가짓수가 많고 양이 많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많이 해서 퍼주는 것은 시부모의 경제적 위세, 곧 가부장제의 실질적인 권력의 상징으로 돼있다.
그러나 그 돈이 다 자식들이 힘들게 분담해서 낸다고 할 때 이는 허식이라 할 수 있다.
●명절 놀이문화의 부재
현재의 명절문화는 성차별적이고 폐쇄적인 가족문화의 온상이라는 점이 가장 심각한 지적사항이다. 위에 다양하게 인용한 대로 사람들이 마음에 진정한 즐거움과 기대를 가지고 맞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으로 치러 내야하는 습관적인 연례행사로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명절이 사람을 위한 명절이 아니라 남성중심 가부장제의 실존을 확인하는 하나의 행사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대가 변하고 여성들의 평등에 대한 욕구가 높아짐에 따라 시대착오적인 가부장제 명절 문화에 대한 비판과 문제의식도 높아가고 있다. 명절이 여전히 가부장제를 기본인식으로 고집하는 한 경제적인 부담과 여성에 대한 과중한 노동부담, 정서적 폭력(긴장 억울함 속상함 불편함 실망 원망 충돌)등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악순환을 막을 길 없고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 후대에서는 명절이 아예 없어지는 것이 낫다고 여길 가능성도 높다.
이제 명절은 바뀌어야한다. 가족이라는 제도가 시대에 따라 변하면서 지금까지 오래된 사회제도로 남아있듯이 자연의 절기 중에 좋은 때를 누리게 한다는 명절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달라져야 한다. 가부장제, 남성 혈연중심주의, 가족제도와 단절된 평등하고 평화로운 명절로 새로운 탄생을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