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흐름은 쌀 수출 금지하는데 우리나라만 쌀 감책 추진
쌀은 남는데 국내 결식자 60만명 추산 … 농어업 선진화 방안, 영세농어민 정책 배려 부족
2009-08-06 영광21
쌀 재고 때문에 농민들의 걱정이 많다. 이대로 가면 금년 수확기에 작년 쌀 82만톤 정도가 재고로 쌓일 것이라고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나는 농림수산식품부 장태평 장관에게 최소한 10만톤 이상의 쌀을 빨리 시장에서 격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장 장관도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런 대화가 있은 지 한 달이 훨씬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정부에서 아무런 조치가 없는 것은 서운하다. 기왕에 할거라면 빨리해서 쌀값 하락도 막고, 우리 농민들의 근심도 덜어주었으면 한다.
우리는 쌀 재고가 남아서 걱정이지만 눈을 조금 크게 떠보면 세상은 그렇게 녹록치가 않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세계의 기아인구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10억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세계 기아인구 10억명 돌파
세계인 6명중 1명이 배를 곯고 있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배를 곯는 인구가 1년 사이에 1억명이나 늘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는 정말로 굶어서 죽는 사람도 있다. 굶주림이나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이 작년에 세계적으로 9백만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평균하면 하루에 2만5천명이 굶어죽은 것이다. 그중에 1만6천명은 5살 미만의 어린이들이다. 어린이들이 기아에 훨씬 더 취약하다. 시간으로 계산하면 3.5초에 1명씩 굶어 죽는다. 아이들은 5초에 한명씩 굶어 죽는다.
그런데도 농업투자를 늘리지 않고 식량증산에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런 인류는 응징을 받아도 도리가 없지 않을까.
세계가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식량을 두 배로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 유엔의 권고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우리 대한민국도 그런 권고를 외면한다면, 결코 축복받는 나라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북한도 그렇다. FAO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북한에서 식량 84만톤이 부족할 것 같다. 참으로 공교롭다. 우리는 쌀 82만톤이 남을 것 같다고 하는데, 북한은 84만톤이 모자라다 하니, 우연치고는 희한한 우연이다.
북한에서는 약 650만명이 배를 곯을 것 같다는 전망도 나와 있다. 그 중에는 굶어 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1998년부터 2001년에 걸쳐 북한에서 200만명이 굶어죽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중에 7할이 5살 미만의 어린이들이다. 우리의 쌀 재고가 남기 때문에 북한에 주어야 한다면, 그것은 실례다. 우리 동포를 재고처리용으로 여길 수는 없다.
식량 세계적으로 부족
그러나 서울에서 불과 몇 십㎞ 떨어진 곳에서 우리 동포가 굶고 있는데 우리는 쌀을 썩히고 있다면, 우리 민족사는 지금의 우리를 가장 비겁한 사람들로 기록할 것이다. 그런 일만은 막았으면 좋겠다.
세계적으로 식량이 모자라는데, 그러면 우리는 모두 풍요로울까.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도 배를 곯는 사람이 60만명이나 된다. 결식아동이 30만명, 결식노인수는 정확히 파악도 안되고 있다. 거기에 노숙자를 합쳐서 60만명 정도가 끼니를 거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쪽에서는 쌀이 남아서 걱정인데 우리 내부에도 배를 곯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어딘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에는 쌀 재고가 많다는 이유로 쌀 생산 감소를 묵인하려는 기류가 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잖아도 우리나라 경지면적이 지난 10년 동안 매년 0.8%씩 줄어들었다. 특히 작년 1년 동안에는 여의도 면적의 30배에 해당하는 농경지가 사라졌다.
이대로 두어도 좋은 것일까. 지금 쌀이 남아돈다고, 앞으로도 계속 남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필리핀은 1970년대에 세계에서 쌀을 제일 많이 수출하는 나라였다. 지금은 쌀을 수입해 먹는다. 심지어는 식당에서 내놓는 쌀밥을 절반으로 줄이라고 정부가 지시했다.
1970년대 이후 필리핀은 태국이나 베트남에 비해 쌀의 경쟁력이 약하니까, 쌀은 태국과 베트남에서 수입해서 먹자고 해서 농업투자를 줄였다.
농업투자를 줄이니까 농촌소득이 줄고, 농촌소득이 줄어드니까 이농하고, 이농을 하니까 논밭이 황폐화되고, 그래서 쌀 농업을 망친 것이다. 그게 오늘날 필리핀이다. 우리가 가는 길이 필리핀 같은 길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방심할 처지도 아니다.
중국은 작년부터 쌀 옥수수 밀에 대해 25%의 수출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수출을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러시아는 밀에 대한 수출세를 10%에서 40%로 올렸다.
인도 베트남 이집트는 쌀 수출을 아예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세계가 이렇게 식량보호주의로 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농경지를 줄이고 쌀 생산을 더 줄여도 좋다고 내버려 두는 것이 옳을까.
식량 보호주의 세계의 흐름
이렇게 기아인구가 늘어나고 식량보호주의가 강화되는 것이 세계의 흐름이다. 이것은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가지신 분들이라는 뜻도 된다. 농민이 가장 막강한 칼자루를 쥐고 계시는 것이다.
농민들은 스스로 하시는 일에 대해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가져 주셨으면 한다. 정책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더 깊게 고민들을 하겠다. 그 과정에서 농민과 농업 관련 단체의 의견도 충분히 들을 것이다.
이 기회에 농어업 현안 몇 가지에 대해 설명 드리겠다. 쌀의 조기 관세화가 이미 논의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지금같이 국제곡물가가 치솟는 시기에 의무도입물량(MMA)을 그대로 이행하느니, 차라리 내년부터라도 관세화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서는 한번 시장을 열면 다시 닫기가 어려운데 그래도 괜찮을까, 그러다 국제곡물가가 떨어져 버리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걱정한다.
정책 당국자와 농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서 신중한 결정을 하도록 유도하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늦어도 2014년에는 쌀시장이 개방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미리미리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요즘 정부가 농어업선진화위원회를 통해 내놓는 농어업선진화방안에 대해서도 농어민들의 걱정이 많다. 농어업을 미래지향적 세계지향적으로 변모시키고 경쟁력을 키우려는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농어업선진화방안에 농어민, 특히 영세 농어민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농어민단체들의 비판도 바로 그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농어업선진화방안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공청회를 열어 농어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도록 하겠다.
국회의원 이낙연 /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