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과 선택은 유권자의 몫

데스크칼럼

2004-04-14     영광21
이제 결과만 남겨둔 4.15 총선은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획을 그을 여러 과제가 함축되어 있다. 부패정치 청산, 지역주의 극복, 진보정당 의회 진출, 대통령 탄핵 국민심판 등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내용들이다. 이와 함께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냉전수구세력의 향방이다.
한국 사회의 모든 모순구조의 뿌리인 냉전세력은 역사적으로 슬프게도 해방과 함께 태동한다.

조국과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들은 갑작스런 일본의 패망으로 갈 길을 몰라 헤맸다. 이런 친일파들이 약삭빠르게 들고 나온 것이 반공이란 만능열쇠였다.

반공이란 옷을 입은 친일파들은 해방 직후의 혼란과 좌우 분열을 교묘히 이용하여 남한의 기득권을 틀어쥐었다. 냉전수구세력의 득세는 한국 정치와 역사를 왜곡시켰고, 한국 사회를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몰고 나갔다.

이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역주의를 부추기면서 정치기반을 탄탄히 다졌고, 자신들의 부도덕성을 감추고 권력을 굳히는 도구로 이용했다.

무조건 상대를 ‘빨갱이’로만 몰면 생기는 반사적 이익에 눈독을 들였던 색깔론자들의 파렴치한 기세가 이번 선거에서는 한풀 꺾인 듯 싶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성숙된 시민의식과 부패정치 청산 분위기에 눌려 깨끗해진 선거풍토와 함께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하겠다. 다만 이런 현상이 냉전세력이 크게 위축되거나 깊이 반성한 결과의 산물이 아니라 선거에서 색깔론이 전처럼 먹혀들지 않아서 생긴 결과라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은 남북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분단상황 아래서 사는 사람들은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진정 인간답게 살 수 있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

그런데도 일상생활에서 전쟁 위협과 스트레스를 잊고 지내게 된 것은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하던 일이다. 세계의 ‘화약고’로 꼽히던 한반도가 이나마 안정을 찾게 된 것은 오랫동안 남북이 화해·협력을 모색한 결실이며, 그 절정이 남북 정상회담이다.

남북 정상이 만나서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자고 악수를 나누는 일을 직접 눈으로 보고나자 비로소 국민은 남북이 만날 수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사상적 우물에 갇힌 개구리의 좁은 시야로만 세상을 보다가 다른 세상도 있음을 문득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냉전수구 세력은 이런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역행했다. 극우 냉전적 시각이 여전히 판을 치며 남쪽 사회에 갈등과 불신의 골을 깊게 했다.

선거철만 되면 느닷없이 ‘북풍’이니 ‘총풍’이니 하는 엉뚱한 발언으로 국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였다. 국회에서는 중요한 고비마다 남북화해와 협력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으로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게 하여 소모적인 싸움으로 국력만 헛되이 낭비하게 하였다.

그런 그들이 이젠 이중전술을 쓰고 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는 남북대치시대를 이끌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은근히 자극하는 한편,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는 사진을 선거 막바지 TV 광고에 내는 등 탈냉전 이미지를 과시하였다.

달라진 시대상황을 반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느낀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냉전수구세력인 박정희의 공화당이 뿌리를 내리고, 전두환의 민정당이 줄기를 세운 한나라당의 본질적 성격이 얼마나 바뀔 것인가에 있다. 이제 심판과 선택은 깨어있는 유권자의 몫으로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