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공직 몸담은 청렴한 일꾼
김근순 / 전 대마면장
2009-09-27 박은정
평생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있는 반려자 아내와 읍내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1964년 공채시험에 합격해 서울시청에서 공무원생활을 시작한 김 씨는 결혼을 했지만 아내는 고향인 대마면 화평리 하화마을에 남아 시부모와 시동생, 시누이를 돌보며 떨어져 지냈다.
고향을 그리며 10여년간 서울에 살았던 그는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자 홀로 자녀를 키우고 가족들을 돌보며 고생하는 아내가 안타까워 귀향할 것을 결심했다.
김 씨는 부시장을 찾아가 고향으로 전근할 것을 요청했다. 당시 부시장은 ‘남들은 서울을 오지 못해 안달인데 다시한번 생각해 보라’고 만류했지만 그는 영광군으로 발령받아 내려왔다.
물론 영광군청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의 근무도 가능했지만 그는 고향인 대마면사무소의 근무를 희망해 그곳에서 총무계장, 부면장을 거쳐 면장을 지내다 1998년 퇴임했다.
재직시절 ‘청렴’을 원칙으로 맡은 바 최선을 다한 김 씨는 마음이 따뜻하지만 원칙을 중요시하는 올곧은 공직생활로 본보기가 됐다.
김 씨는 “제가 서울시청에 근무할 때 많은 업자들이 허가를 청탁하는 대가성 돈을 뭉치로 가져오기도 했지만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라며 “그를 탐냈다면 부를 거머쥘 수는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마음 편히 고향에 머무르지는 못했을 겁니다”라고 지나온 세월을 되짚었다.
그가 면장시절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은 “당시 면장님은 항상 저희들을 가족처럼 대해 주셨고 특히 여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높았던 분이었다”고 기억했다.
얼마 안 있으면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이 다가온다. 이처럼 명절이나 집안의 애·경사가 있으면 여직원들에게 전·후로 휴가 또는 출장을 내줘 맘 편히 맡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선조의 유지를 받들고 정직하게 살자’라는 가훈아래 1남3녀의 자녀를 둔 김 씨는 자녀 모두 바르게 성장해 건설업, 교사 등을 지내고 있다.
특히 김 씨의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의병장을 지냈고 할머니가 효와 절개를 지킨 열부로 후손들의 관심과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 의미있는 가문을 자랑하고 있다.
그는 임진수성사 이사장을 비롯해 군정평가위원, 범죄예방위원회 자문위원, 영광향교 장의 등을 맡아 퇴임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제 멀리 갈 길을 준비해야 한다”며 지나온 세월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는 김 씨는 평생 고생하며 자신과 가족 뒷바라지에 일생을 희생한 아내와 안정되고 편안한 일상을 가꿔가고 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