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없이 오로지 일에만 전력 값진 성과 이뤄

안희주 / 전 염산면장

2009-11-07     박은정
어린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울타리를 넘고 있는 새염산어린이집. 그곳을 도착하기 바로 전 입구 주택에서 웃음이 인자한 노신사를 만났다.

간편한 복장으로 집 앞의 화초들을 돌보는 그는 오래전 염산면장을 지낸 안희주(85)씨. 혹시나 차가워진 가을 바람에 부대끼기라도 할까봐 애지중지 화초에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철두철미한 그의 성격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염산 상계리에서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한 안 씨는 목포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1년만에 접고 광주 충장로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시작한 사업이 번성하던중 운영하던 사업장이 화재로 어려움을 겪었고 새롭게 시작한 사업마저도 고전을 겪자 교사로서의 복직을 고민하던 어느날, 친구로부터 염산면장 추천을 받아 경쟁자를 물리치고 염산면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때가 그가 30대 중반이던 1961년 6월.

그후 1966년 2월까지 염산면장을 지낸 안 씨는 현재 군 염전으로 운영되고 있는 터를 마련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숱한 역경을 딛고 1년여 공사 끝에 방조제를 설치하고 간척지를 만들어낸 안 씨는 면장 재임당시 가장 큰 성과로 꼽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위치에 있다 보면 온갖 염문과 중상모략이 따르기 마련이다. 당시에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전념하던 안 씨를 향한 오해의 시선이 많았다고. 그런 와중에도 소임을 다했던 안 씨는 이런저런 사유로 1년여 공백기를 거쳐 1967년 염전관리소장으로 발령받아 근무했다. 이곳에서 13여년 근무했던 안 씨는 1980년 다시 염산면장으로 발령을 받아와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고 1986년 4월 퇴임했다.

“면장재직시 맡겨진 어떤 일이라도 3등을 넘지 않았다”고 말하는 안 씨는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다보니 무엇보다 직원들이 가장 고생이 많았다”고 지난시절을 회고 했다.
이렇게 공직을 마감한 안 씨는 염전관리소장 재직시 터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염전을 시작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또 20대 초반 연애로 만나 평생 해로하고 있는 아내가 30년 넘게 운영한 어린이집의 대표이사를 맡아 정신적, 경제적 테두리가 돼 주고 있다.
자식들에게 언제나 “재물에 욕심이 과하면 화를 면치 못한다”고 가르쳐 왔다는 안 씨는 슬하의 4남1녀중 3명이 영광군청을 비롯한 공직에 몸담고 있어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권위의식을 버리고 위민봉사에 앞장서며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늘 겸손하고 청렴한 공무원이 되길 바란다”고 후배공직자들에게 당부하는 안 씨는 황혼의 발자취를 젊은 시절 못지않게 건강히 그려가고 있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