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역동의 세월 웃고 울며 헤쳐나가
김상수 / 전 홍농읍장
2009-11-12 영광21
가을바람과 가을낙엽 그리고 가을비까지 오려는 몹시 우울한 하늘아래 마당 한켠에서 만난 김상수(75)씨.
70대 중반임에도 건장한 체격에 건강해 보이는 그는 “지난시절에 대해 특별하게 내세울 것이 없다”며 방문을 내내 불편해 했다.
홍농읍에서 2남중 둘째로 태어나 6·25 때 부모를 모두 잃은 김 씨는 어렵게 생활하며 군대를 제대한 후 공무원시험에 응시해 합격, 1963년 6월 정식발령을 받아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영광군청에서 잠시 근무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고향인 홍농읍사무소에서 근무한 김 씨는 각 부서의 업무를 두루 맡아 하면서 주민들과 가까이 지냈다. 그는 각 부서담당과 부면장을 거쳐 1985년 2대 홍농읍장으로 근무하다 승진해 1995년 3월 정년퇴임했다.
“물이 귀하던 시절 지하수를 개발하고 대형관정을 설치해 가가호호 상수도를 공급했던 일, 홍농초등학교 체육관 건립비를 지원했던 일, 홍농복지회관을 건립해 주민자녀들의 결혼이나 각 단체들의 모임과 행사를 원활하게 진행하게 할 수 있었던 일 등이 떠오릅니다”라며 주마등처럼 스치는 지난시절을 돌이키는 김 씨.
그는 가난하기 그지없던 1960년대 초 공직에 입문해 새마을운동이 활발히 펼쳐지며 새로운 격동기를 맞이한 1970년대를 함께 일궜다. 또 나라가 성장하며 찾아온 민주화 열풍이 거세던 1980년대를 주민들과 호흡했다. 그리고 홍농읍에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시작된 주민들의 반목과 갈등이 최고조였던 1990년대 초까지 숱한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지만 김 씨는 무리없이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김 씨는 “가진 재산도 없고 뒤에서 받쳐 줄 배경도 없던 저는 처한 현실을 받아드리며 맡은 직무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라며 “30년 넘게 공직에 몸담으면서 최선을 다하려고는 했지만 크게 잘한 것도 없는데 지금도 만나는 주민들이나 후배들이 반갑게 맞아주고 있어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라고 지난세월에 대한 보람을 내비쳤다.
지나간 뒤에 남은 자국이나 자취인 흔적, 김 씨는 공직을 떠난 세월이 14년이나 흘렀지만 지역주민과 후배공직자들의 기억속에는 성실하고 반듯한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19세 때 결혼해 슬하에 3남3녀를 두고 있는 김 씨. 그는 현재 평생 자신과 자식을 위해 헌신하다 오래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마와 싸우는 아내를 간병하며 황혼을 정리하고 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