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했지만 인정 넘치고 마음 따뜻했던 스승
이승만 / 전 대마초등학교장
2009-11-19 영광21
노란 은행잎을 밟으며 언덕진 길을 올라 도착한 노스승의 집. 나란히 새겨진 명패가 부부의 다정다감함을 나타내 주고 있는 집안에서 만난 이승만(76)씨는 연로함의 무게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순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이 씨는 순천농고, 여수수산고 등지에서 선수로 활동하다 광주사범고로 발탁돼 와 선수생활을 마쳤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법성포초등학교로 처음 발령받아 와 영광과의 첫 인연을 시작한 이 씨는 영광중앙초를 비롯한 안마초, 군서초, 낙월초, 백수남초, 묘량서초 등에서 교직생활을 했다.
총 46년간의 교직생활중 광주와 나주에서의 11년의 생활을 제외한 35년간을 영광에서 근무한 이 씨는 1999년 8월 대마초등학교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임했다.
“혹독한 성격으로 제 손에 매를 안 맞은 학생이 없을 정도였다”며 지난시절의 회상에 젖는 이 씨.
그는 “잘못된 행동을 보이거나 약속을 어기는 일을 했을 때는 엄하게 혼냈지만 속으로는 언제나 제자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며 “저학년보다는 5, 6학년 고학년 담임을 많이 맡았던 저는 교감으로 승진한 후에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좋아 자주 보결수업을 자청해 들어갈 정도였다”고 밝혔다.
이 씨의 제자들은 지역에 남아있거나 고향을 떠나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다. 벌써 반백이 다된 제자도 있고 40세를 넘은 중년이 돼 왕성한 사회활동을 펼치는 제자까지 그를 기억하는 제자들이 많다.
지역사회의 지도층 인사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법성의 한 제자는 “가난하고 어렵게 국민(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점심도시락을 저에게 내주셨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며 “그때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이 없으셨다면 오늘날 제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당시 학생들의 지각하는 습관을 고쳐주기 위해 학생들과 같이 등교를 하던 일, 지금처럼 교재가 발달하지 못한 시절 학습을 위한 교과준비와 교육현황 등을 준비하던 시간을 돌아보며 눈물짓는 이 씨.
건장한 체격에 운동 잘하던 ‘호랑이선생님’이 이젠 황혼의 연약함에 초연해 보였다.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학생들을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성으로 지도해 주길 바란다”고 후배교직자들에게 당부하는 이 씨. 그는 공무원, 사업가, 유치원 교사 등을 지내는 2남1녀 자녀들의 효도를 받으며 평생반려자인 아내와 쇠약해진 몸을 조심스럽게 추스르고 있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