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시집 보내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합니다”
정갑례 <폐백전문가>
2009-12-17 영광21
아주 옛날에는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가 며칠 밤을 새며 정성껏 음식을 장만해 예의를 갖췄지만 요즘은 폐백전문점에 의뢰해 전통을 갖추기 보다는 형식적인 모양만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영광읍 도동리 한 주택에서 만난 정갑례(62)씨. 쌀쌀해진 날씨속에서도 그는 가족뿐만 아니라 친지에게 보낼 김장준비로 바쁜 모습이었다.
여느 가정집의 어머니처럼 평범해 보이는 정 씨. 하지만 그는 20년 넘게 폐백을 만들어 온 전통음식의 장인으로 지역에 입소문 나있는 사람이었다.
대마면 남산리에서 7남매의 세째딸로 태어난 정 씨는 솜씨 좋은 어머니 아래서 보고 배워 어린시절부터 음식을 잘 만들었다.
24세에 5남1녀의 큰며느리로 시집온 정 씨는 약과, 전과, 산자 등 한과를 비롯해 누룩을 빚어 담근 곡주 등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음식을 잘 만들었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을 내조하고 슬하의 3남1녀를 기르며 솜씨를 묻어두고 살았다.
친척이나 이웃들의 부탁으로 조금씩 폐백을 만들어 오던 정 씨는 남편의 고향인 대마면 원흥리에서 딸기농사와 누에를 기르며 살던 농촌생활을 정리하고 영광읍으로 이사를 나왔다.
이후 정 씨의 솜씨는 하나둘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를 찾는 사람이 점점 늘어 지금껏 폐백을 만들고 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솜씨에 따라 각각 다른 맛을 내듯 어떤 음식을 만들어도 맛있게 만들던 정 씨의 폐백솜씨는 전국적으로 퍼져 유명인사의 폐백요청이 줄을 이었고 이름만 말해도 금방 알 수 있는 유명연예인까지 정 씨가 만든 한과를 주문해 왔던 것.
이처럼 자타가 공인하는 전통음식의 달인이었던 정 씨지만 그는 정면에 나서기 보다는 조용히 솜씨를 발휘하며 실력을 감추고 살아왔다.
정 씨는 “폐백에 사용되는 모든 음식은 하나하나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야하므로 시간이 많이 걸려 주문이 들어와도 다 받을 수가 없다”며 “특히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잘 살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어느 것 하나 소홀함 없이 정성을 다해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타고난 솜씨와 스스로의 노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친정어머니가 돼줬던 정 씨. 그는 환갑을 넘어 황혼 길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전통음식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세월의 무게로 만성 허리디스크라는 고질병을 안고 사는 정 씨.
그는 부탁해 온 폐백에 정성을 다하며 요즘 유행하는 퓨전음식이 아닌 전통을 잇는 ‘정통폐백’ 만들기에 최선을 다해 더욱 자리가 빛나는 것인가 보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