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고풍상 인생속에 인륜도덕 앞장
신종권 / 임진수성사적보존회 전 이사장
2010-01-14 영광21
눈길을 따라 도착한 마을서편 끝쪽 언덕에 위치한 집에서 만난 신종권(83)씨. 그는 곧은 성품 때문인지 80세가 넘은 연로함속에서도 정정한 자태를 느낄 수 있었다.
대마면 화평리 하화마을, 순말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에서 3남중 둘째로 태어난 신 씨는 1947년 영광공립농업중학교 졸업후 일찍이 교사채용시험에 합격해 대마동국민학교에 근무하며 교직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6·25를 겪으며 교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그는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다. 그러던중 주변의 권유로 다시 경찰시험에 응시, 경위까지 승진했지만 정치적인 압박에 몰리면 단기간의 경찰생활을 마감했다.
이처럼 시대의 아픔과 역동기를 거치며 녹록치 않은 삶의 길을 걸어온 신 씨는 대마면사무소에서도 잠시 근무했고 대마농협 조합장을 지내기도 했다.
“농협 조합장 시절 선진지견학과 지금의 화훼농가의 기반을 조성하는 농업발전을 위해 주력했었다”고 지난날을 돌이키는 신 씨.
그는 이후에도 영광향교 유도회장, 전교 등을 지냈고 임진수성사적보존회 이사장 등을 지내며 전통과 문화계승에 앞장서 활동했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겪어 온 많은 고생이란 뜻의 ‘만고풍상’속에서도 지역주민들과 후손들에게 전통예절과 정신을 가르치며 인륜도덕에 모범을 보인 신 씨는 현재 국가유공자 전라남도 부회장을 비롯해 경우회원으로 활동하고 향교와 임진수성사적보존회, 충의회 고문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의 큰 어른이 되고 있다.
또 관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노인대학 등에서 효도와 예절 등에 관한 강의를 펼치고 여행과 등산을 목적으로 한 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건강을 지키고 있다.
더불어 평소 좋아하는 시를 맘껏 지어 시집을 8권째 발간하는 등 문예활동에도 여념이 없다.
그는 17세에 결혼해 평생을 동거동락한 아내와 7년전 사별해 홀로 지내고 있었지만 슬하의 3남3녀의 자녀들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빈자리를 채우며 크게 외로워 보이진 않았다.
“예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며 예절을 잘 지키고 효심이 깊었던 민족이 점점 그 빛을 잃고 퇴색해 안타까움이 크다”고 말하는 신 씨는 인생의 역경속에 비록 한 우물을 팔수는 없었지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깨끗이 정리된 집주변의 대나무 밭에 찾아온 새들과 대화하며 하루를 맞이하고 마음을 비우며 남은 황혼을 정리하고 있다”고 말하는 신 씨는 지역역사를 장식한 인물임이 틀림없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