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과 함께 청렴한 교육자로 남아

김성영 / 홍농서초 전 교장

2010-01-21     영광21
지난주 전국에서 가장 눈이 많이 내린 영광지역. 순식간에 대지를 푹푹 빠지게 한 눈은 금세 온 세상을 마비시킬 것 같았지만 자연은 햇볕을 내려 주변을 녹이고 있다. 아무리 제설작업기가 동원되고 많은 사람들이 앞장서도 자연이 녹인 눈을 따를 수 없는 것을 보면 자연의 순리를 절대 배신할 순 없는가 보다.

주민들이 연로해서인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 외는 눈이 치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백수읍 장산리. 동물의 발자국이 새겨진 눈길을 따라 올라 만난 김성영(85)씨.
반가움에 미소 짓는 얼굴에 자상함과 정이 듬뿍 묻어나는 김 씨는 40년 넘게 교직에 머물렀던 교육자다.

일제시대말 교육열 넘치는 가정의 큰 아들로 태어난 그는 7세 되던 해 부모와 일본으로 건너가 생활했다. 어렸을 때부터 총기가 넘쳤던 김 씨는 ‘조센징’이라는 일본인들의 핍박속에서도 전체1등과 학급장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어려움속에서도 일본에서 소학교와 고등소학교를 마치고 사범학교에 합격한 김 씨는 2년간 학교를 다니던중 8·15 해방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맞아 다시 한국으로 부모와 귀국했다.

이후 김 씨는 일본에서의 교육과정을 인정받아 한국에서 교육자의 길에 걷기 시작해 백수중앙초를 비롯해 백수서초, 안마초, 대마초 등을 거쳐 홍농서초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부모의 높은 사랑속에 일찍이 근대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평생 학생들과 함께 한 삶은 보람있고 행복했었다”고 말하는 김 씨.

그는 “해방직후 모든 것이 어렵던 시절 교사를 맡아 기본적인 교육은 물론 학교의 시설확충과 보수 등 해결해야할 일들이 무척 많았다”며 “예전 학생들이 넘쳐나던 시절 교실이 부족해 학교에 교실을 증축한 일, 마지막 퇴임지였던 홍농서초에서 학교가 현재 원전이 위치한 터에 자리해 학교를 이전하기위해 주민과 학부모를 설득하던 일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고 지난 일을 회상했다.

매사 소신과 책임감이 넘치던 김 씨는 퇴직후에도 노인대학장을 역임하는 등 크고 작은 사회활동을 펼치며 지역선배로 존경받고 있다.
그리고 그는 묵향을 벗 삼아 60년 넘게 사군자를 그리고 있어 서예인으로도 명성이 나 있다.

시간 나는 틈틈이 사군자를 그리고 있는 김 씨의 작업실에는 훌륭한 솜씨로 그려진 매·난·국·죽의 모습들이 자태를 뽐내며 장식돼 있었다.
부인과 사별하고 홀로 지내는 김 씨. 그는 일제시대에 지어져 겉모습은 다소 낡기는 했지만 옮겨지는 방마다 전통찻집을 연상하게 잘 꾸며진 집을 정갈하게 가꾸며 건강히 살고 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