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정신 입각해 최선 다한 봉사자
김진호 / 영광군새마을회 2·3대 전 회장
2010-03-11 영광21
새마을운동은 근면·자조·협동을 정신적 기조로 대통령의 절대적인 후원과 우수한 남녀 새마을지도자 그리고 정부라는 3자의 연합이 핵을 이루면서 추진된 대 국민운동이었다.
새마을운동의 진가가 나타나기 시작하던 1980년대 초반 영광군새마을회 2·3대 회장을 맡았던 김진호(77)씨. 그는 세월의 연로함을 동반하고 있었지만 당시활동을 이야기하는 모습에는 그 때의 기백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영광읍 도동리 출신인 김 씨는 20여년간 공직에 몸담아 영광군청에서 일하다 퇴임한후 지역 선·후배들과 새마을지도자들의 추천으로 회장에 출마, 경쟁자를 물리치고 2대 회장에 선출됐다. 이후 3년간 활발한 활동을 펼친 김 씨는 다시 재임, 3년간의 과업을 원활하게 마무리하고 퇴임했다.
“지금도 많은 후배들이 지역과 나라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제가 회장을 맡았을 당시에는 각리의 새마을지도자들이 활동을 무척 열심히 전개했다”며 지난 세월을 회상하는 김 씨.
공직생활 퇴임후 가전제품대리점을 운영했던 그는 회장역임당시 취약계층의 경로당 48개소를 선정해 20인치의 칼라TV를 증정해 TV가 귀하던 시절 주민들의 문화적인 갈증을 해소시켜줬다. 또 관내 모범 새마을지도자들을 초청, 관광버스 여러 대를 대절해 선진지견학과 관광을 실시하는 등 주민들과 회원들을 위한 일에 앞장선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처럼 재직당시 많은 사업을 펼친 김 씨는 지금도 새마을회의 활동과 회원들의 안부를 살피며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 그 모습이 더욱 값져 보였다.
회장직을 퇴임하고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온 김 씨는 평생 반려자인 아내와 여행을 다니고 보고 싶은 지인들을 찾아가 만나며 한량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특히 그는 1남4녀의 자녀를 모두 서울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보내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게 하고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시켜 ‘자식농사’를 잘 지은 사람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하루라도 집에 있으면 좀이 쑤신다”며 다시 마실 나갈 채비를 하는 김 씨는 한 시대의 격동기를 보내고 조용히 안주해 있었지만 지난 역사속의 주인공으로 옛 전성기를 추억하고 있었다.
새마을운동을 펼쳐 경제적 자립을 이루게 하고 나라의 선진국대열 진입의 의지를 불태웠던 김 씨는 국민적 근대화운동의 산증인임이 틀림없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