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과 집념으로 바른 읍정 구현
조영표 / 전 영광읍장
2010-04-29 박은정
3,000여두의 돼지를 사육하고 있는 그는 자연인으로 마음 편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영광읍 도동리에서 2남3녀중 둘째로 태어난 조 씨는 이웃마을 교촌리에 터를 잡아 오랫동안 생활했다.
영광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모교인 영광고에서 3년간 교편을 잡았던 그는 5·16군사쿠데타 이후 군입대를 했고 전역후 교직으로 복귀가 가능했지만 지역기자로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이렇게 언론인으로 몸담게 된 조 씨는 지역기자로 활동하면서 지금의 터를 마련했고 1960~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나라의 부흥을 이루던 시절 국가시책으로 권장하던 잠업사업에 열중해 대통령으로부터 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자생활을 이어가면서도 벼 재배를 비롯한 다양한 농사를 지어왔던 조 씨는 일상의 절반은 농사꾼으로 살았다.
이런 그는 1983년 7월 제5대 영광읍장으로 추대돼 행정에 입문, 1995년 3월까지 12년간 읍정을 책임져왔다.
농촌개혁 바람이 거세게 불던 1980년대 영광읍장을 지낸 조 씨는 농민의 분노와 사회적 갈등을 잠재우며 농민과 호흡하고 농촌을 대변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조 씨는 “업무를 처리하는 부분에서는 매우 엄격해 직원들에게 호랑이 읍장으로 통했다”며 “하지만 직원들의 고의적인 업무실수가 아닌 것에는 입장을 이해하고 문제해결에 대한 방법을 모색해 주려고 노력했다”고 재임시절 소신을 전했다.
그는 또 “읍장 재직시절 많은 사업중에 주민들이 통행에 불편을 겪어왔던 관내의 비포장도로의 포장공사를 완료했던 일과 상습적인 침수를 방지하는 복개공사추진 등의 활동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지난 활동을 떠올렸다.
이후 조 씨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민주당 텃밭이나 다름없는 지역에서 무소속으로 군수에 출마해 2번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교육 언론 행정 등 무수한 과정을 겪으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조 씨.
그는 젊은 시절 노후의 쉼터로 장만했던 자연의 품에서 복잡 미묘한 세상을 10여년 넘게 등지고 살고 있다. 하지만 활동 당시의 청렴한 기백은 아직 그대로 남아 황혼의 버팀목이 되고 있었다.
“정확한 시선, 정확한 생각, 정확한 행동을 뒷받침으로 한 후배들의 활동을 기대한다”고 말하는 조 씨는 현실을 직시하고 정도를 걷는 지역의 어른으로 겸허한 생활에 안주해 있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