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경, 부역혐의자 가족 재판없이 주민 128명 희생
진실화해위원회 “국가 공식사과, 위령비 건립, 역사기록 수정 등 국가에 권고”
2010-06-17 영광21
민족상잔의 아픔인 6·25 발발 60주년을 앞두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이영조)가 15일 1951년 4월까지 군경의 수복작전과 부역자 색출과정에서 영광지역 주민 128명이 군경에 의해 좌익이나 빨치산과 부역자, 입산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희생되거나 연행된 후 행방불명된 사실을 밝혀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기록원과 영광경찰서 등에서 입수한 사건관련 자료인 판결문, 한국경찰 적 동향 1일보고서 등의 자료검토와 목격자 및 신청인·참고인들의 진술청취, 현장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재여부와 희생자를 그동안 조사해 왔다.
조사결과 희생자로 확인 및 추정된 인원은 128명으로 이들은 영광지역에 거주하던 민간인들이었다.
희생자중에는 여성 33명(26%), 10세 이하의 어린이 7명(5%), 51세 이상의 노인 8명(6%)도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당시 묘량면에서는 4살된 어린이 2명을 포함해 남녀노소 구분없이 30명이 경찰에 의해 집단희생 됐다.
불갑면에서도 경찰이 마을을 포위하고 주민들을 집결시킨 다음 부역행위가 의심되는 주민이나 가장이 피신해 버린 가족 등을 선별해 현장에서 집단 희생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1950년 12월과 1951년 1월 경찰이 실시한 ‘갓봉작전’ 때 백수읍에서는 22명이 희생됐다. 이들은 대부분 피난가지 않고 집안에 남아 있던 주민들이었으며 이중 가정주부 7명과 2~4세의 유아 4명도 포함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의 가해주체는 영광경찰과 전라남도경찰국 소속의 경찰, 제11사단 20연대 2대대 8중대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이 여순사건 이후 혼란한 시기와 전쟁상황에서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국가기관인 경찰과 국군이 적법한 절차없이 민간인들을 살해한 것은 인도주의에 반한 것이며, 헌법에서 보장한 생명권과 적법 절차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 불법행위였다”고 지적했다.
이에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의 공식사과와 이 사건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비 건립 및 위령제 봉행 등 위령사업 지원, 역사기록 수정 및 등재, 제적부·가족관계등록부 등의 정정, 평화인권 교육을 국가에 권고했다.
한편 영광지역은 한국전쟁기 군단위 지역중 가장 많은 민간인 인명피해가 발생한 곳으로 알려졌다. 본지 제32호 2003년 6월12일 보도참조
1954년 3월 공보처가 발간한 <피살자 명부>에 기재된 인원(적대세력에 의한 피해)만도 2만1,225명에 이르고, 진실화해위원회가 지난 2008년 전남대 사회과학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피해자 현황조사>에서는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3,047명, 군경에 의한 희생 1,271명으로 파악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에 따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전후, 1945년 8월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항일독립운동, 해외동포사, 민간인 집단희생 등의 사건진상을 규명해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2005년 12월1일 출범한 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