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청만 높이면 돈을 주는 도깨비 방망이에서 벗어나야

2010-09-02     영광21
국내 유수의 병원에 가도 원인을 찾지 못하는 지병으로 계속 고생을 하다 보니 상당한 기간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줄곧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옮겨 다니다가 모처럼 고향 법성포에 왔더니 주민들과 한수원 직원들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름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알고 보니 다름이 아니라 지난 8월20일 홍농읍 복지회관에서 열기로 한 영광 1호기와 2호기 파워업레이트(Power Uprate - 출력증강) 주민설명회 때문이었다.

설명회가 열린다는 곳을 가보았더니 꽤나 많은 지역주민들이 있었고 상당수는 이전에 한수원이 주민들과 합의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설명회를 열 수 없다고 했다. 이날 주민들은 예전의 주민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전 같으면 아수라장이 됐음직도 한데 주민들은 한층 성숙된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개중에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온갖 육두문자를 쏟아내며 폭력을 휘두르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무난한 흐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상승기류를 탄 주민들의 힘차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대처에 힘입어 그날 설명회는 결국 무산됐다.

주민들의 요구는 대체로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전에 한수원이 어민들과 주민들에게 해주기로 한 약속을 먼저 이행한 후에 설명회를 하든지 실망회(?)를 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주민들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할 수 있는 공청회나 토론회를 정당하게 거친 후에 설명회를 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절차를 제대로 밟아서 약속한 사항을 먼저 이행한 후에 설명회를 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땅에 떨어지기에도 아까운 지당한 말씀이다. 한수원은 파워업레이트를 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상태에서 설명회를 한다는 것은 요식행위를 갖추기 위한 일종의 꼼수를 둔 것이다. 주민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으면 무사통과해서 자신들의 계획대로 끌고 가려고 했던 마음보가 심히 괘씸해 울화통이 터지고 분통이 치솟았다.
최근에는 한수원이 주민들과 좀 더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는 것이 얼핏 보아도 한 눈에 보였다. 전에 비하면 한수원이 주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려고 여러모로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점에서 이런 일이 생겨서 심히 유감스럽고 안타까웠다.

한수원은 이번에 무산된 설명회를 거울로 삼아 지역주민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기 위해 좀 더 고민했으면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주민들과 한수원은 이웃이 돼 같이 살고 있는 운명공동체가 됐다. 핵발전소가 이곳에 건설됨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근 30년을 티격태격하다가 알게 모르게 온갖 정(?)이 생겼다고나 할까.
애당초 지역민의 의사는 아랑곳없이 지어진 핵발전소이기에 한수원에서는 주민들의 아우성이 단지 보상을 위한 것이라는 편협한 사고를 버리고 먼저 주민들에게 한 발짝 다가서려는 마음가짐을 보여줬으면 한다.

또 주민들은 피해가 있으면 당연히 배상을 받아야하지만 무조건 목청만 높이면 돈을 주는 도깨비 방망이가 한수원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가 살 수 있는 상생과 소통의 길은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 찬 석 / 본지 편집인oneheart@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