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나는 전통 지키는 아름다운 사람
영광의 문화예술인 47 - 농악 노병남
2004-06-17 박은정
고 전경환(예능보유자)씨의 뒤를 이어 최용 영광우도농악 보존회장과 함께 우도농악을 이수해 보급하고 있는 노병남(41)씨. 그는 영광 남천리가 고향으로 서울서 자동차업과 건설노동을 하면서 노동자운동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다 20대 후반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는 그때부터 영광농민회 활동을 하며 농민들이 정당한 이익을 지키고 사회·정치적 지위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지금까지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노동자운동과 농민회활동을 하면서 우리의 전통 ‘굿’에 깊은 관심을 갖게돼 지금은 고인이 된 전경환씨를 찾아다니며 농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노 씨는 “노동자운동 시절 전 세계의 투쟁사를 공부하면서 라틴이나 아메리카가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고 오랜 전통을 이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민족자체가 흥이 넘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우리굿도 현장성과 시대성을 함께 느낄수 있고 많은 이들이 함께 어울리고 동참할 수 있는 훌륭한 놀이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농악이란 균일성을 기본으로 하는 기능적인 연주도 중요하지만 자율적인 흥을 관중에게 심어주고 굿판에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다”며 “영광의 우도농악은 형태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짜임새가 가장 큰 매력이다”고 우도농악의 특징을 설명했다.
영광우도농악은 ‘간이 맞다’고 한다. 그건 바로 대중을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인 것이다. 이처럼 ‘굿’은 민족의 노동에 희망을 주고 어려움을 풀어주며 그 전통과 맥을 이으며 재생산되어 온 것이다. 10대부터 80대까지 활동을 하고 있는 우도농악에서 중쇠를 맡고 있는 그는 최용 회장과 함께 우도농악의 세부적인 정착을 위한 지도를 펼치고 있다.
백수읍과 군남면은 최용 회장이 맡아 지도를 하고 노 씨는 대마면에 태청풍물패를 조직해 지난 2002년부터 지도를 하고 있다. 또 영광중학교 특기적성 교육지도를 잠깐 맡아 하기도 했다. 4남2녀 중 막내아들인 그는 지금 어머니를 모시고 벼 보리 콩 등 주곡중심의 농사를 짓고 있다.
아버지가 생전 당시 굿판에서 각시분장을 하고 즐겁게 어울리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그는 아마도 아버지의 재간을 물려받은 듯 싶다. 노 씨는 농민회 사무국장 조직부장을 거쳐 현재는 부회장을 맡아 일하고 있다. 모내기 등으로 한창 바쁜 농사일과 농민회활동 등으로 무척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는 농악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못함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 하는 일 중에 가장 신명나는 일은 농악이다”고 표현하는 노 씨는 틈틈히 공연을 하고 있고 우도농악이 마을굿으로 확산 보급되기 위한 작업을 꾸준히 계획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