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하고 효심 깊은 바른 교육자
구동순 / 전 영광초 교사
2011-02-10 박은정
이웃으로 보이는 한 어르신과 아궁이가 설치된 옛부엌에서 열심히 장작을 쌓고 있는 구동순(80)씨는 아내가 사람이 찾아왔음을 알리는 소리에 작업을 중단하고 밖으로 나왔다.
“보잘 것도 내세울 것도 없어 오지 말라고 했는데 뭐 할라고 왔을까.”
내심 부끄러운 첫인사를 건넸지만 구 씨는 인자한 우리들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반갑게 맞아줬다.
영광농업중학교와 광주사범학교를 마치고 1954년 교직에 입문한 구 씨는 44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동안 학생들 곁을 지킨 교육자로 1997년 정년퇴임했다.
1950년 6·25 이후 극심한 가난에도, 1960년대 근대화의 변화에도, 1970년대 개혁의 물결속에도, 1980년대의 민주화투쟁속에도, 1990년대 세계화의 과정에서도 구 씨는 오로지 교육자로 한길만을 걸어왔다.
2남2녀중 차남이었지만 6·25때 경찰을 지낸 형을 잃고 독자가 된 구 씨는 아내와 부모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극진히 봉양하며 80년 평생을 고향에만 살고 있다.
이처럼 효심이 깊던 구 씨는 교직의 첫발을 영광초에서 내딛어 해남에서의 1년을 제외하고는 군서, 불갑, 묘량, 군남초 등에서만 교직생활을 하고 초임지였던 영광초에서 퇴임했다.
부모 곁은 지키기 위해 고향 가까운 곳으로만 근무를 희망한 구 씨는 타지역 또는 도서지역에서 근무해야만 얻어지는 벽지점수를 포기하고 승진보다는 평교사로 남아 제자양성에만 전념했다.
특히 중학교입시가 시행되던 시절, 6학년 담임을 오랫동안 맡아 진학을 앞둔 학생들의 진로상담에 주력했다.
구 씨는 “무엇보다 학교는 기초교육에 충실해야 하며 사랑과 정이 싹트는 곳이어야 한다”며 “더불어 가정과 사회의 관심이 뒷받침돼야 하고 무엇보다 학생 스스로의 노력이 더해질 때 바른 교육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초창기 가르쳤던 제자들이 벌써 환갑을 넘어 60대 중반이 됐지만 지금까지 함께 한 제자들 모두 이루고자 한 꿈을 실현하고 바른 삶을 살며 행복하길 바란다”며 “인생의 최고 목표가 물질이 아닌 정신적인 풍요가 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편안한 여생을 살아가길 기원한다”고 제자들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교직 퇴임후 영광향교 유림으로 활동을 시작한 구 씨는 관내 교직퇴임자들의 모임인 상록회장을 맡았었고 현재 영광향교 장의와 부춘리노인회장, 대한노인회 영광군지회 이사 등을 맡아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