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항 선생 일화 담긴 ‘맹자정’ 반드시 복원해야

강필구 군의원

2011-04-14     영광21
수은 강 항 선생의 일화가 얽힌 ‘맹자정’을 반드시 복원해야 한다.
수은 강 항 선생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일본에 성리학(주자학)을 전해 일본 성리학(주자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유학자다.

선생은 세조 때의 문장가 강희맹의 5대 손으로 불갑면 유봉리에서 강극검의 세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다섯살 때 글을 짓고 아홉살 때 지금도 남아 있는 유성약천성부幼成若天性賦를 짓는 등 놀라운 문재文才를 보였다.

27세에 과거에 급제했고 31세(1597년) 때에는 정유재란을 당해 분호조청分戶曹廳의 종사관으로 고향에서 군량을 모으다가 영광 앞바다 논잠포에서 왜의 수군에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후 1600년에 일본에서 고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두가지 업적을 남겼다.
강 항 선생의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내산서원과 맹자정이 있다.

맹자정은 불갑면 안맹리 소재 정자를 일컫는데 맹자정의 일화를 살펴보면 선생이 일곱살 되던 해에 불갑면 쌍운리 운제마을에서 서당에 가는데 지금의 맹자정 부근에 이르러 맹자책을 팔러 가는 책장사와 만나게 됐다.

선생이 책구경을 청하니 처음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거절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끝내 보여줄 것을 청해 7권으로 된 <맹자> 한질을 내주자 처음부터 책장을 넘겨 갔다. 책장수는 옳다 임자를 만났다 생각하고 은근히 기대를 했다. 그러나 한질을 다 넘긴 선생은 책장수에게 책을 도로 반환하는 것이었다.

책장사는 맥이 풀려 선생에게 책사기를 권했다. 선생은 “다 외워버렸으니 안사요” 하는 것이었다. 책장사는 반신반의하며 <맹자> 한질의 내용을 물으니 그 때마다 척척 알고 있었다. 책장사는 그 때야 선생이 보통 아이가 아닌 신동임을 알았다.

책장사는 수재를 만나면 돈을 받지 않고 주는 옛 관례가 있어 그 책을 선생에게 받기를 권했으나 “다 외워버린 책이니 다른 사람에게 팔으라”고 사양했다. 생각다 못한 책장사는 돌아가는 길에 정자나무 위에 책을 매달아 놓고 가버렸다. 이런 일이 있은 후 후인들이 그곳을 가리켜 ‘맹자정’이라 했다. 그리고 그 마을을 맹자마을이라 아직도 부르고 있다.

선생의 유명한 일화인 맹자정이 지금은 그 주변에 기적비만 세워져 있고 정자나무도 뿌리째 캐내어 없어졌으며 정자도 없다. 선거 때만 되면 많은 입후보자들이 맹자정을 복원하겠다고 공약을 하고 있으나 그때 뿐이다.

정기호 군수가 2010년 7월12일 군·면정보고시 2011년 국도비 예산을 확보해 맹자정을 복원하겠노라 약속했으나 맹자정 복원예산은 반영되지 않고 있다.

하루 빨리 맹자정 복원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확보해 맹자정 복원사업을 시행하고 군서면의 모인이 뿌리공예로 소장하고 있다는 맹자정 정자나무의 뿌리도 맹자정 터에 다시 원위치시켜 강 항 선생의 훌륭한 업적을 널리 알려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