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감히 고 박관현 열사를 두번 죽이는가

2012-02-17     영광21
4·11 총선 공천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미 헌나라당이 된 한나라당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특수부 검사출신인 정홍원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민주통합당은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강철규 우석대 총장을 각각 공직후보자 추천 심사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새누리당은 시스템과 원칙에 따라 계파 나눠먹기식 공천을 불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정치권과 별 인연이 없는 인물을 골랐다는 설명이고 민주통합당은 재벌개혁과 부패청산에 앞장섰던 경험으로 공천혁명을 주도할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영광·함평·장성을 지역구로 하는 우리 지역에도 공천열기가 아주 뜨겁다. 예비후보들은 출판기념회니 사무실 개소식이니 뭐니 해서 정신줄을 놓을 지경으로 바쁘다.

예비후보들이 저마다 공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는 것은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그렇지만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행위 앞에서는 도저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다. 그것도 나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에 대한 것이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것은 바로 모 예비후보가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마치고 불갑면에 있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고 박관현 열사(1953년~1982년)의 동상을 방문한 일이다.

자랑스런 영광의 아들 그리고 광주의 아들인 박관현 민주열사의 동상에 그 예비후보가 방문한 일은 박관현 열사를 두번 죽이는 것이다. 박관현 열사의 1주기 추모식의 추도사를 쓴 나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고 박관현 열사는 19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5·18 직전까지 광주시민과 학생들의 반독재투쟁을 주도하다가 신군부가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조치와 동시에 보안사에서 재야인사들을 체포하자 광주광역시를 빠져나가 여수로 도피했다.

1982년 4월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았으며 50일간의 옥중 단식투쟁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열사의 동상을 방문한 자는 학생들이 직접 선출한 총학생회장 출신이 아니라 학도호국단 운영위원들의 간선에 의해 선출된 학도호국단 총학생장 출신이기에 더욱 울분이 터진다.

2006년 전라남도 선거관리위원회는 “그의 선전벽보 및 책자형 선거공보에 게재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 회장 경력사항은 허위사실로 결정한다”고 밝히며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은 전남대학교 학도호국단 총학생장으로 기재하여야 한다”고 ‘정정지시’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렇다면 학도호국단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이해가 빠를 것이다. 학도호국단은 1949년 대통령령 제186호로 공포된 ‘대한민국 학도호국단 규정’에 따라 발족한 학생자치단체로서 학생층의 사상통일과 단체적 훈련을 강화해 애국심을 함양시키고 국가에 헌신봉사함을 목적으로 했다.

그러나 초창기에 설립된 학도호국단은 4·19혁명 이후 해체됐고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학풍쇄신과 정신력 배양을 목적으로 발족한 ‘재건학생회’가 그 기능을 계승했다.

이후 1975년 문교부 주도로 개최된 전국 98개 대학 총장회의에서 학도호국단 창설이 논의됐으며 그해 9월에 전국중앙학도호국단이 발족했다. 고등학교 이상의 학생과 교직원으로 구성됐던 학도호국단은 1985년 폐지됐다. 따라서 학도호국단은 그 태생부터 권력의 시녀 역할을 했다. 달리 이야기하자면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이런 단체에서 총학생장은 권력과 밀월관계를 갖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런 자리를 거친 자가 열사의 동상에 참배했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심하게 말하자면 열사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몬 세력에 동승한 자가 열사 앞에 서다니 할 말이 없다. 적어도 양심이 있다면 그 자리만은 피했어야 했다.

박 찬 석 / 본지 편집인oneheart@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