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사고 은폐로 인한 지역주민의 공포감
2012-03-22 영광21
바로 지척에 원자력발전소가 6기나 가동되고 있는 지역주민들은 청천벽력 같은 보도자료를 접하고 경악을 금할 길이 없었다.
비록 전원공급이 중단된 것이 원자로 가동이 멈춘 계획예방정비기간 중이었다고 하더라도 원자로의 핵연료봉에서 핵분열은 계속되고 있으므로 냉각기능을 유지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핵분열이 일어나고 있을 때 발생하는 원자로의 열을 식혀주지 않으면 수천도까지 온도가 상승하면서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최악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용후 핵연료 저장소도 마찬가지로 냉각기능이 상실되면 후쿠시마 4호기 사고와 같은 폭발사고와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전원공급 중단으로 원자로와 사용후 핵연료 저장소의 냉각기능이 12분간 멈춘 것이다.
외부 전원공급이 상실됐을 때를 대비해 이중, 삼중으로 만들었다는 안전장치가 무용지물이 됐으며 핵산업계와 안전당국의 ‘안전’ 주장이 허구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사고와 함께 보고가 동시에 이뤄지는 시스템이 없는 것이다. 한수원이 보고하기 전까지 현장의 주재관은 물론이고 원자력안전위원회 조차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행스럽게도 하늘이 도와 더 큰 사고로 전개되지 않고 12분만에 다시 전원이 공급돼 냉각기능이 복구됐다고 하지만 한달이 넘도록 한수원이 보고하기 전까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사고 발생과 동시에 보고와 공개가 이뤄져서 만약에 발생할지 모르는 사태에 관련해 당국은 물론이고 인근 주민이 대비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비밀에 부쳐진 것이다.
원자력안전법 제92조 ①항과 2호에 따르면 ‘원자력이용시설의 고장 등이 발생한 때’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안전조치를 하고 그 사실을 지체없이 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으며 같은 법 제117조 7호에 의하면 이를 어겼을 경우 ‘징역 1년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불법행동임에도 한수원이 사고 사실을 한달이 넘게 은폐한 것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1주기를 즈음해서 여론이 나빠질까 우려한 나머지 고의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재앙을 남의 일로 여기는 우리 국민은 없다. 역시 원전을 가동하고 있는 나라로써 원전 안전에 대한 반면교사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전력공급이 끊기고 비상디젤발전기 두대와 예비 비상디젤발전기 한대까지 작동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주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우리 지역 역시 마찬가지다.
원자로에 냉각수를 공급하지 못해 자칫하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원자로 점검을 위해 가동 중단돼 있었다고는 하지만 전 국민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한 사고였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비록 우리 지역은 아니지만 영광원전에서는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설명은 있었어야 마땅하다. 직접 하기 어려웠다면 지역 언론을 통해서라도 자세한 설명을 했어야 마땅하다. 이런 마당에 영광원전에서 하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현장에 100여명의 인력이 근무하고 있었지만 한달 넘게 보고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도 모두들 입을 닫았다는 사실에 지역주민들은 더욱 불안하게 생각한다.
영광원전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동안 우리가 봐온 바에 의하면 영광원전의 정보가 투명하게 주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의 안전에 대해 온 국민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 특히 원전을 인근에 껴안고 사는 지역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러한 지역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을 생각은 커녕 마치 앵무새처럼 영광원전은 안전하다고 떠벌린다고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원전가동을 당장 중단할 수 없는 현실과 원전을 수출까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전의 안전은 국가적인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원전관리를 맡고 있는 한수원은 그 막중한 책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계기 시험 과정에서 직원의 실수로 전력이 끊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시험 과정에서 예비발전기를 점검하지 않은 채 전원이 끊어질 수 있었다는 점 또한 기술적으로 안이한 대처였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은폐 시도는 한수원의 원전관리능력까지 문제를 삼을 수 있다. 원전 사고는 있어서는 안될 사고다. 사후 약방문은 더욱 있을 수 없다. 시스템을 점검하고 조직을 추슬러 사고가 날 수 없는 체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안된다.
원전을 가동하는 한 투명하고 열린 채널을 통해 온 국민, 특히 지역주민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도록 책임있는 관리를 해야 한다. 지금처럼 영광군의회 원전특위위원장에게 조차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는 한수원은 분명히 각성해야 한다.
그리고 수명이 다한 원전의 출력증강(Power Uprates)을 할 자격이 없음이 다시 한번 확인됐으며 원자력위원회 역시 안전규제에 있어 무능함을 확인했다.
대형 원전사고는 이런 비밀주의와 무능함이 결합돼 발생한다. 다시 말하자면 원전의 안전성은 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수원은 이 점을 뼈아프게 받아들이기 바란다.
박찬석(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