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명물 ‘항아리 아저씨’를 아시나요
김대자 / 만능일꾼
2012-05-03 영광21
영광읍 교촌리에서 5남2녀의 맏아들로 태어나 영광초등학교를 마칠 무렵인 1963년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든 그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동생들과 자식들 돌보느라 많은 일을 섭렵했다.
영광읍에 극장이 두개나 있던 시절 김 씨는 자전거를 타고 각 읍면에 영화포스터를 하루면 다 붙이며 돌아다닐 정도로 부지런했다. 죽은 이의 입관일도 하며 수년간 따라다니던 모 운수사에서 독립해 26살때 이삿짐센터를 열면서 업체 사장님이 됐다.
사다리차가 없고 고층건물도 5층이 가장 높았던 시절 이삿짐을 줄로 끌어서 오르내리고 250㎏이나 나가는 피아노도 혼자 지고 2, 3층까지 옮기던 그에 대해 “대자씨에게 이사를 맡기면 시계, 액자, TV안테나까지 세워서 잡아주고 요강까지 씻어서 엎어줄 정도여서 사람들의 인심을 얻었다”고 한다.
리어카로 15년, 차 따라다니면서 15년하던 이삿짐센터일을 56세까지 하고 현수막 올리는 일을 7년간 하면서 “30년간 사다리 한번 안 떨치고 운전하면서 한번도 도랑에 안 빠졌다”던 김 씨는 일하는 틈틈이 27회의 각종 방송출연과 봉사로 30여회의 크고 작은 상을 받았다.
그러던 김 씨는 영광지역뿐 아니라 함평, 무안, 사창, 장성, 무장, 공음까지 다니며 10여년 동안 3,000여개의 옹기 항아리를 모았다. “‘돌아가신 옹기장인이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나를 하루라도 건강하게 살게 해줄까’하는 마음에서 멋진 항아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김 씨는 “구운 항아리를 직접 만들던 분들이 대부분 돌아가셨다”고 못내 아쉬워 한다.
그는 그렇게 귀하게 모으던 항아리 2,700여개를 1999년 영광군에 기증했다. 그 옹기 항아리는 현재 군남면 포천리 돌탑공원 옆으로 빙둘러 세워져 있다. “둥그런 항아리처럼 넓은 마음으로 살아왔디.
높게 쌓아도 항아리는 둥그르니까 바람이 돌아서 안 넘어진다”며 힘쓰는 그 옛날 만능일꾼 시절을 회상하는 듯 싶다.
인생의 황혼기에 자전거를 타며 한결 여유로운 시간들로 채워나가는 항아리 아저씨의 기행을 그 누가 따라갈 수 있을지 지난날의 그를 안다면 감히 답하지 못할 것 같다.
박은희 기자 blessto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