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묘량인에게 영원할 ‘묘량초등학교의 얼’

묘량초등학교 70년의 역사속으로

2004-09-02     영광21
묘량면은 구한말 황량면(동부)과 묘장면(서부)으로 유지돼오다 1914년 일제 강점기에 조선시대 해체 일환으로 지방행정구역이 개편돼 묘량면으로 합면됐다. 묘량초등학교는 일제 점령기시대(1930) 조선교육령에 의해 묘량면 영양리 영당제당에서 1·2학년 2학급으로 4년제 보통학교로 개교해 그 해 11월에 신천리(진천마을)로 이사해 23년간 존속해 왔다.

6·25전쟁이 끝나갈 9월에 현재 위치로 이설 이후 74돌을 맞이하지만 6·25전쟁 혼란과 묘량중학교 통·폐합으로 인해 졸업생이 한명도 없는 해가 있었다. 통·폐합 당시(2003)까지 70회 총 4,008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 묘량초등학교였지만 묘량중학교가 학생수 격감으로 폐교(2002년)되는 과정에서 영광읍내로 전학사태가 벌어져 폐교 당시 묘량초등학교는 4·5학년 학생이 한명도 없고 4개 학년에만 학생수 17명이라는 과소규모학교로 전락됐다.

학부모들이 중학교 통·폐합 당시부터 초등학교도 함께 통·폐합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돼 오다가 복식학급으로 전락되기 시작하자 ‘내 자식들을 우물안 개구리로 자라게 할 수 없다’는 자녀교육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학부모 전원 동의로 학교가 폐교되는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중학교가 폐교될 당시 학교장이나 영광교육청에서는 면내(묘량초·중앙초)로 통합해 1면 1개 학교를 유지해야 한다는 안과 중학교를 포함한 병설학교로 면 중심지에 신설하자는 정책안을 제시해 3∼4년 동안 양교 학구민들을 설득해 보았지만 동서 주민 이해관계로 성사되지 못하고 결국 묘량 초등학교는 읍내 영광초등학교로 통합됐다.

이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묘량초등학교의 역사적 사실을 수록할 작은 묘량초등학교 70(회)년사를 발간하게 됐다. 묘량초등학교 70(회)년사는 교기 등과 함께 영광초등학교 역사관에 보관된다. 학교를 사수하려고 노력했던 학교장을 비롯한 10여명의 교직원과 자녀교육을 위해 통·폐합을 열망한 학부모들, 폐교의 아픔을 함께한 선배와 유지들은 후배들의 배움터에 ‘묘량초등학교의 얼’이 영원하길 기원하고 있다.

그리운 학교
전 묘량초교 5학년 서철원

내가 다니는 작은 학교
이제는 갈 수 없네
꽃이 펴도 갈 수 없고
해가 떠도 갈 수 없고
혼자서도 갈 수 없고
동생과도 갈 수 없네

눈 감으면 생각나고
잠잘 때도 생각나네
문 닫는 우리학교
이제는 갈 수 없네

내가 밟은 운동장에
풀이나고 풀이죽고
내가 앉은 나무아래
비가오고 눈이오고

보고싶은 우리학교
가고싶은 우리학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