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도서관 학부모독서회 - 근대역사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②
군산, 역사속의 주인공이 되는 곳
며칠 동안 채만식 선생님의 책 <태평천하>를 집어들었다 내려놓다만 하다가 오늘을 맞고 말았다.
꼭 읽고 가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 반밖에 읽지 못한 채 문학기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러다 한 작품도 못 읽고 가겠다는 노파심에 ‘치숙’과 ‘레디메이드 인생’을 먼저 읽어두길 잘했다 생각하며 서둘러 집을 나왔다.
버스가 출발하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꽃들과 노랗게 익은 벼를 보자 설렘과 기대감이 밀려왔다. 일본의 가옥이 아직 남아있는 군산은 어떤 곳일까? 관객과 함께 움직이며 공연을 보는 연극은 어떤 느낌일까?
드디어 채만식 문학관에 도착했다.
사진 속의 백릉 채만식 선생님은 너무나도 멋진 미소를 가진 분이셨고 그 때문인지 문학관의 내부는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던 아들을 위해서 어려운 시절에도 학교를 보냈다는 선생님의 아버지에게서 뜨거운 부정을 느꼈고 글을 쓰고 싶었던 마음에 안정된 직장에 사표를 낸 선생님의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
원고지 모양으로 꾸민 문학관의 한쪽 벽면은 글 쓰는 것을 좋아하신 선생님을 기리기 위함이라 한다.
선생님은 생각보다 많은 책을 쓰셨다. 동화까지 쓰셨다는 설명에 1930년대의 시대 풍자소설을 많이 쓰셨던 선생님의 동화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졌다. 해설가의 설명이 대부분 <탁류>소설이다 보니 못 읽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워진 나는 집에 돌아가면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930년대 서민들의 생활과 고통느껴
잠시 뒤 큰 가창오리 조형물이 반기는 철새 조망대에 도착했다. 꼭 원앙같이 생겼는데 가창오리라고 한다. 북한에서는 눈 주변에 태극무늬가 있다고 해서 태극오리라고도 한단다. 가창오리보다는 태극오리라는 말이 왠지 멋지게 들렸다. 15분 정도의 영상물을 3D안경을 쓰고 관람했다.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논에 가창오리 한마리가 날아올랐다. 논에 진한 색의 풀(?)을 심어 꾸며 놓은 작품이었다. 한달쯤 후 날씨가 더 쌀쌀해지면 40만여 마리의 철새가 올 거라고 하는데 그들을 대신해 나 같은 많은 사람들의 서운한 마음을 위로 해주는 역할을 그 오리가 맡은 건 아닐까? 고마운 오리라는 생각에 사진으로 남겼다.
너무 많이 걸었는지 모두들 배가 고프다고 난리다. <옹고집>에서 맛있는 쌈밥과 청국장을 먹었다. 폐교를 식당으로 꾸며 밥먹는 내내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 들었다.
2시에 시작되는 시대극 공연을 보기위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경보를 하듯이 바쁘게 들어간 근대역사박물관은 작년에 개관했다고 한다. 1930년대로 떠나는 시간여행이 정겨운 풍금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앉고 어른들은 서서 공연을 관람했다.
그 시절 우리 서민들의 생활과 고통, 일제에 대한 저항을 온몸으로 느끼느라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딸내미 연우는 일본의 쌀 수탈 장면에서부터 무섭다며 내 가슴에 머리를 묻고 쳐다보지도 못한다. 마지막에 아리랑을 부를 때는 애국심으로 가슴이 뜨거워졌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더 자세히 둘러보고 싶은데 연우는 자꾸 나가자고 한다. 어떻게 하면 아픈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하는 조바심을 누르면서 연우의 기분도 바꿔줄 겸 1층 해양물류역사관을 관람하는 대신 3층의 세계도자기&크리스털 특별전을 보았다. 그제야 연우 얼굴이 밝아진다. 볼거리가 많은 근대역사박물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아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역사적인 아픔 속에서도 강인함을 잃지 않아
차로 2분도 안돼 다음 도착한 곳은 진포해양 테마공원이다. 고려말 최무선 장군이 화포를 이용해 왜구를 물리친 진포대첩을 기념하는 곳이다.
어느덧 3시가 훌쩍 넘고 이제 1930년대에 지어진 일본식 가옥을 구경하는 일정이 남았다. 연우는 ‘이웃집 토토로’가 생각난다면서 즐거워했다. 이곳은 작은 숲안에 집을 지어놓은 듯한 분위기가 났다.
물이 흐르지 않는 길쭉한 연못을 보며 일본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런 것들이 일본의 애니메이션 문화를 발전시켰는지도 모른다. 집안에 들어가서 좁은 계단도 올라가보고 마루에도 걸터앉아 보고 싶은데 하필 공사 중이라니 너무 아쉬웠다. 시대극을 보면서 일본이란 나라를 경멸하고 분노했는데 일본식 가옥에 와서 감탄하고 사진 찍고 있으려니 기분이 묘해졌다. 조상들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고나 할까?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은 저마다의 추억들을 담은 회원들의 들뜬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동안 나에게 군산은 항구가 있는 도시에 불과했는데 오늘 이후 채만식의 문학이 흐르는 먼 길을 날아올라 찾아오고픈 철새들의 그리운 고향으로 느껴질 것이다.
30년대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고 최무선의 화포로 고려를 괴롭혔던 왜구를 소탕한 자랑스러운 곳, 일본의 정적인 정원과 더불어 이국적인 건축물을 볼 수 있는 멋스러운 도시, 무엇보다 역사적인 아픔 속에서도 강인함을 잃지 않은 군산의 모습은 오랫동안 생생하게 기억될 것 같다.
안은경 / 잎싹 학부모독서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