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맺은 인연이 네 아이의 엄마와 아빠로”

일진 스님 <법성 은선암>

2012-12-13     영광21

영광종합병원 문화센터 <그림둥지>회원으로 활동하면서 2013년 8월에 있을 회원전시회 준비에 한창인 일진 스님(66).

일진 스님을 만나기 위해 법성면 대덕리에 자리한 은선암을 찾아 나섰다.

전주가 고향이라는 일진 스님은 “초등학교 때 사명대사를 읽고 출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며 “30여년전 태고종을 통해 불가에 입문해 신선이 숨어있다는 뜻의 은선암隱仙庵에 1981년 가을에 들어왔다”고 불가에 입문한 배경을 들려줬다.

일진 스님은 “처음 은선암에 들어온 뒤 12월에 첫눈이 왔었다”며 “하얀 눈 속에 빨간 단풍잎이 대비돼 한번 감탄하고 비온 뒤 빗물이 그대로 얼어버린 나뭇잎이 햇빛에 반사돼 수정처럼 빛났을 때 두번 감탄하고 그 다음해 여름폭포소리에 세번 감탄했다”고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의 단면을 소개했다.

일진 스님은 잠시 맺은 인연을 바른 방향으로 잘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현재는 세 아이의 아빠와 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

돌 안에 만난 큰 딸은 35살 때 짝을 맺어줬고, 둘째딸은 은선암자로 데려온 부모가 고2때 데려갔다. 또 동국대학원에 다니는 셋째딸, 대학을 졸업한 막내딸은 일진 스님과 마찬가지로 불가에 입문해 스님으로 지내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생활하면서 웃을 때가 많이 없는데 애들과 인연이 된 후 웃는 일도 생겼다”며 “3살 때쯤 왔던 큰 딸이 초등학교 1학년때 ‘아빠, 오늘 아빠 생일이지?’하며 콩과 빨대를 잘라 엮은 목걸이를 선물했을 때였다”고 회상한다.

딸들은 그녀를 ‘아빠’라고 부르며 성장했는데 “둘째딸이 고2때 만화방을 출입해 찾으러 다닐 때 가장 많이 울고 아팠다”고 어려웠었던 기억을 더듬는다.

이곳에서는 함께 생활하는 보살과 함께 도라지, 고들빼기, 파, 무, 더덕, 고추농사를 직접 짓는 등 자급자족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일진 스님은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을 열심히 했던 양태완 스님을 비롯해 1,000년의 세월을 거쳐 큰 스님들과 애국지사들이 이곳 은선암에 기거를 많이 했다”며 “은선암다운 도량으로 클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좋겠다”는 바램을 전했다.

영광종합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곳 전정숙 간호부장의 소개로 유화를 배우게 됐다는 일진 스님은 “그림을 그릴 때면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계속 손이 간다”며 “특히 제가 유화물감을 섞어 만드는 녹색은 수십가지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다”고 녹색에 남다른 감각이 있음을 내비쳤다.

풍광이 멋진 산골짜기 은선암에서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고 새순이 새롭게 돋는 싱그런 봄에 은진 스님의 건강하고 멋진 작품활동을 기대해 본다.
박은희 기자 blesstoi@yg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