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갈 길이 먼 탈핵 한국의 현주소

■ 핵폭발만큼 컸던 한국반핵운동의 성장

2013-03-14     영광21

천주교 영광성당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2주기를 즈음해 13일 ‘에너지 정의행동’ 이현석 대표를 초청해 <우리나라 전력정책과 핵발전의 문제점>을 주제로 환경 특강을 진행했다.
2000년 ‘청년환경센터’로 출발한 ‘에너지 정의행동’은 석유고갈, 에너지 위기, 기후변화 시대를 맞아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분석과 대안제시를 표방하고 있는 환경단체이다.
/ 편집자 주

동일본대지진이 있었던 2011년 3월11일은 금요일이었다. 11일 지진이 있고 다음날이 12일부터 후쿠시마 1호기가 폭발했고 주말과 월요일을 거치면서 2~4호기도 마저 폭발했다.

어느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혼란스러운 상황. 무언가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필요성이 계속 제기됐고 준비가 되지 않았더라도 급하게 상황을 공유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16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범시민사회단체 긴급대책회의>가 소집됐다.

모인 이들은 약 80여명. 경주, 군산 등 4개 지역에서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주민투표가 불법, 탈법으로 진행되면서 시민사회단체가 반대운동을 벌이던 2005년 이후 최대의 인원이 불과 며칠만에 모였다.

하지만 한국반핵운동은 힘이 약화된 상태였고 전국을 통털어 열명도 되지 않는 극소수의 활동가, 그나마 핵문제만 전업으로 담당하는 이는 거의 없는 말그래도 명맥만 이어가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1년. 후쿠시마 핵사고는 한국반핵운동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환경단체와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들의 투쟁으로 치부되던 운동이 이제는 종교계, 생협, 노동조합 등 다양한 사회각계각층으로 확산됐고 핵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을 소개해 달라고 누군가 부탁해 오면 절판돼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이나 일본, 미국의 책을 소개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으로 바뀌었다. 그후 1년간 후쿠시마 핵사고와 핵발전의 문제점을 다룬 책은 20여권이 출간됐기 때문이다.

‘탈핵’ 운동진영의 공약
이는 후쿠시마 이전 20여년간 출간된 책보다 4~5배는 많은 분량이다. 특히 후쿠시마 핵사고 1년을 맞은 2012년 3월10일에는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이란 제목의 행사가 서울과 부산에서 열렸다.
 
서울 행사의 경우 7,000~8,000명, 부산의 경우 1,000명 정도가 탈핵을 주제로 모여 문화행사와 각 단체의 부스를 만들어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과거 핵폐기장과 핵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있을 때 해당 지역주민들이 수천명씩 상경해 집회를 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다양한 지역사람들과 특히 서울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인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는 분명 ‘사건’이었다. 그만큼 핵없는 세상을 꿈꾸는 국민들의 염원은 컸고 많은 이들은 이것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탈핵의 열기는 뜨거웠다. 후쿠시마 핵사고는 정치권의 생각 전체를 바꿔놓았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전 ‘탈핵’은 진보정당의 공약이기는 했지만 실제 운동진영 내에서도 “어쩔수 없지 않느냐”는 회의론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후쿠시마 핵사고 2년을 거치면서 이제 탈핵은 진보진영 전체의 화두가 됐다. 그간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던 민주당마저 핵발전소 전면 재검토를 공약을 내걸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런 변화의 정점에는 녹색당 창당이 있다.

그간 녹색당이란 이름을 내건 정당이 몇차례 창당된 적은 있었으나 녹색의 가치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거나 정당법의 높은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창당에 실패했다.

현행 정당법은 창당을 위해 최소한 5개 광역도시에 각각 1천명의 당원이 있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총선에서 2% 이상의 득표를 하지 못할 경우 등록이 취소됨에 따라 다시 창당 절차를 밟아야 하는 등 신생정당에는 너무나 불리한 법적 규정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녹색당은 7,000여명의 당원을 가진 정당으로 당당히 출범했다. 그리고 이어진 총선에서 핵발전소 현안이 걸려 있는 경북 영덕과 부산 기장군에서 후보를 내는 기염을 토했다.

한편 이러한 국면에서도 여당인 새누리당의 핵발전 정책은 너무나 견고했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정부와 여당은 탈핵은 고사하고 오히려 핵발전을 옹호하고 확대하는 정책을 줄곧 견지해 왔다.

이명박 전대통령은 온 국민이 방사능 비 공포로 떨고 있을 2012년 5월 “핵사고가 일어났다고 핵발전을 포기하는 것은 인류가 후퇴하는 것”이라며 핵산업계를 직접적으로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고 2011년 11월에는 제4차 원자력진흥계획을 통해 ‘후쿠시마 핵사고를 핵발전 수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이 정부 공청회 자리에서 발표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새누리당을 제외한 모든 여당은 정부의 핵발전정책에 문제를 제기했다.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들은 탈핵시나리오에 기반한 핵발전소 폐쇄 일정을 총선 공약으로 발표했고 대표적인 보수정당인 자유선진당 조차 탈핵시나리오를 묻는 질문에 2050년까지는 핵발전을 줄여야 한다고 발표하는 등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탈핵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부시절 신규 핵발전소 건설계획 추진으로 비판받았던 민주통합당 조차 핵발전 정책 재검토와 노후 핵발전소인 고리1호기, 월성 1호기를 폐쇄하는 내용을 정책에 반영했고 민주당 전·현직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탈핵전현직 국회의원모임이 만들어지는 등 바야흐로 정치권에서의 탈핵흐름은 가속화됐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정책만큼은 달랐다. 그간 정부가 핵발전소를 계속 추진하는 정책을 펼쳐왔던 것이 총선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급기야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 1번으로 한국원자력연구원 민병주 연구위원이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새누리당의 선택은 명목상으론 여성과학자를 우대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많은 여성과학자들을 중에서도 핵공학자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위치를 핵산업계와 핵발전소를 옹호하는 정당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차례 실패, 이제 거품은 사라졌다
그리고 선거가 끝났다. 안타깝지만 선거의 결과는 야당의 참패이다. 탈핵문제 이외에도 다른 많은 사회적 이슈가 제기됐고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선거였지만 총선은 152석을 새누리당이 차지하는 것으로 끝났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탈핵문제를 중심으로 총선 전후를 달려온 이의 입장에서 총선은 한마디로 ‘거품의 붕괴’였다.

사실 한국의 선거는 아직 정책선거가 아니다. 다양한 정당이 정책으로 승부하기를 바라지만 항상 선거에서 쟁점은 정책이 아니다.

이번 선거 역시 야당은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문제, 현정부 심판론을 주요 이슈로 들고 나왔고 여당은 나꼼수의 ‘김용민 발언’을 중심으로 맹공격을 퍼부었다. 언론에서 정책 대결은 없고 지역적으로 인물대결이나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 우리의 선거문화이다.

이러한 가운데 또다시 한미FTA 문제, 제주해군기지, 4대강 사업 등 굵직굵직한 문제들은 쟁점이 되지도 못한 채 묻혀갔고 결국 한미FTA 채결에 앞장선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과 이재오 전의원이 선거에서 당선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는 핵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영광을 제외하고 고리, 월성(경주), 울진 등 핵발전소 후보지에서 모두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고, 이는 삼척, 영덕(울진과 같은 지역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적으로도 탈핵열풍에 힘입어 녹색당이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녹색당은 0.48%라는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을 뿐이다. 녹색당과 함께 2030년 탈핵을 제기하며 선전한 진보신당의 경우에도 1.13% 지지율로 정당등록이 취소되는 수모를 겪었다.

후쿠시마 핵사고 1주기를 맞아 점차 높아지는 탈핵의 열풍으로 총선 승리를 기대했던 꿈은 너무나 냉정한 한국정치의 벽 앞에 산산히 조각난 것이다. 선거는 정책과 기획력이 아니라 조직력과 후보 인지도로 승패가 갈린다는 정치공학법칙에서 아직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늦췄던 계획을 다시 추진
탈핵운동진영에게 선거 참패의 후폭풍은 너무나 크게 돌아왔다. 선거가 끝난지 채 한달이 되지 않은 2012년 5월4일 이명박 전대통령은 신울진 핵발전소 기공식에 참여했다. 최근 10여년간 핵발전소 기공식은 관계부처 장관이 참여하는 행사였지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가 아니었다.

특히 당일 행사처럼 기공식과 준공식이 함께 진행되지 않고 기공식만 단독으로 진행되는 행사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것은 1982년 전두환 전대통령 이후 30년만이라는 점에서 이명박 전대통령의 핵발전소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보여준다.

이명박 전대통령은 당일 행사에서 신울진 핵발전소이외에도 경북도에 원자력클러스터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함께 밝혔다. 제2원자력연구원, 실험용 원자로시설 등을 포함한 원자력클러스터계획은 상업용 핵발전소뿐만 아니라 핵산업 전체를 육성하는 국가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사표명이기도 하다.
특히 원자력클러스터에 포함돼 있는 파이로프로세싱 관련 연구들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기술로 핵확산성을 증가시킨다는 측면에서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도 비판을 받고 있으나 핵산업 육성과 기초과학 활성화를 이유로 함께 추진되고 있다.

한편 현재 21기의 상업용 핵발전소를 늘리기 위한 계획도 계속 추진되고 있다. 현재 확보된 핵발전소 부지는 모두 34개 분량으로 현재의 계획대로라는 2024년까지 모든 부지에 핵발전소가 들어서게 된다.

이에 정부는 삼척과 영덕에 각각 6기씩 모두 12기의 핵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 지난 2010년부터 추진중에 있다. 기존의 핵발전소는 모두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시절 선정된 부지를 바탕으로 계속 증설해 온 것이기 때문에 만약 삼척과 영덕에 핵발전소가 들어선다면 이 또한 3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지역 민심은 더욱 반대쪽으로 돌아서게 됐고 사실상 핵발전소 건설계획은 일시 중단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 계획 역시 총선이후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지난 2012년 4월27일과 5월25일 두차례에 걸쳐 이들 지역에서는 지역주민들이 반대 의사표명중 연행되거나 아예 설명회장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등 어수선한 가운데에서 설명회가 개최됐다.

1980년대 횡횡하던 형식적인 설명회와 지역주민들이 반대,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사업 추진이 또다시 반복됐다. 그간 이명박 전정부가 후쿠시마 핵사고 때문에 늦춰 놓았던 핵발전 정책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거품은 꺼지고 땅은 굳어야 한다
너무 냉정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탈핵운동진영의 총선실패와 이에 따른 후폭풍은 오히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와 우리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탈핵운동의 저변이 탄탄하게 마련돼 있지 않고 자신의 역량에 비해 과대평가 받아온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많은 국민들이 핵문제에 관심을 갖고 탈핵을 이야기하게 된 것은 순수하게 반핵운동진영의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다.

엄청난 사고를 당한 후쿠시마와 그 지역의 주민들이 온몸으로 전달했던 메시지와 사실의 힘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반핵운동진영이 자신의 활동을 통해 이러한 메시지를 계속 옮겨온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 이웃나라에서 벌어졌기에 굳이 반핵운동진영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은 언론보도와 SNS를 통해 그것을 알게 됐고, 그 속에서 핵없는 세상을 자신 스스로 꿈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탈핵은 이루기 힘들고 더욱 큰 대중운동으로 반핵운동이 발전할 때만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기본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이제 우리는 겨우 수천명 규모의 자발적인 집회를 처음 경험해 본 반핵운동의 햇병아리 국가이다.

1980년대 이후 반핵운동이 계속 이어져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은 마치 소수의 인간문화재가 ‘명맥’을 이어오듯이 맥이 끊기지 않을 정도의 활동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 겨우 그 단계를 넘어 보다 넓은 광장으로 가는 입구에 서 있다.

한국반핵운동은 이제 새로운 전략을 짜야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리고 그 전략은 몇몇 운동가들의 몫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핵발전을 보기 싫은 모든 국민의 전략이 되어야 한다.

어찌보면 너무나도 교과서적인 이 전략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전략이다. 당장은 실패를 통해 실망감과 아픔을 겪고 있지만 이 전략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핵없는 미래란 없을 것이다.

이제 거품은 꺼졌고 땅은 내린 비로 엉망진창인 상태에 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핵발전이 위험하다는 것과 핵발전이 인류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에는 전혀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상태를 새로운 미래를 향한 든든한 버팀목으로 삼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우리 사회는 핵없는 세상을 위해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헌석 대표 에너지정의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