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백성으로부터 나온다

■ <사기史記>의 고사성어로 통찰하는 삶의 지혜 ⑥ - 사회적 대통합을 위한 제언

2013-04-11     영광21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다. 정치가들이 입만 열었다하면 하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막상 이들의 말과 판이하다. 우리의 권력은 국민의 손으로 뽑았음에도 국민을 무시하고 박해해 왔다. 권력의 본질을 모르는데서 오는 무지함 때문이다.

주나라 여왕은 자신을 비방하는 백성들의 입을 막으려고 이웃 위나라 무당까지 불러다 감시하게 했다. 백성들은 감히 말은 못하고 ‘길에서 만나면 눈으로 뜻을 나누었다’(여기서 ‘도로이목道路以目’이란 고사성어가 나왔다) 여왕은 자신이 비방을 없앴다며 기뻐했다.

그러자 충직한 소공은 “그것은 말을 못하게 막은 것입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일은 물을 막는 일보다 심각합니다.(방민지구防民之口, 심어방수甚於防水) 막힌 물이 터지면 피해가 엄청난 것처럼 백성들 또한 같습니다.

따라서 물을 다스리는 자는 물길을 터주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말을 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라고 충고했다. 여왕은 충고를 듣지 않았고 결국 기원전 842년 나라 사람들, 즉 국인國人에 의해 쫓겨났다.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왕조체제에서도 백성들의 입, 즉 여론을 무시하고 억압하려다 쫓겨난 권력자들이 적지 않았다. 체제는 바뀌었지만 권력의 원천이 백성들이라는 엄연한 사실은 하나 달라진 것이 없다.

당시 소공은 여왕에게 “백성들은 속으로 생각한 다음 입으로 말하며 충분히 생각한 다음 행동으로 옮깁니다. 그런 그들의 입을 막는 일이 얼마나 오래가겠습니까”라는 충고도 함께 한 바 있다.

사회 대통합은 담대한 포용으로부터
나라의 최고 권력자를 뽑는 대선이 끝났다. 우리의 선거과정은 참으로 많은 치부를 드러내게 한다.
반목과 갈등은 물론 서로를 경멸하는 저질스러운 과정으로 얼룩졌다. 우리의 정치문화가 여전히 싸구려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적나라한 증거이다.

따라서 누가 됐건 갈라진 민심을 합치기 위해서는 그들 입으로 강조했던 사회적 대통합을 실천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대통합을 위한 실질적 행동은 상대에 대한 담대한 포용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기원전 237년,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 16년전(당시 진시황의 나이 23세) 진나라 조정을 발칵 뒤집히게 만든 사건 하나가 터졌다. 정나라에서 보낸 수리전문가 정국이 첩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대대적인 토목사업으로 진나라의 재정을 엉망으로 만들 속셈이었다는 것이다. 충격을 받은 진시황(당시는 진왕)은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수색령을 내리는 한편 진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 출신의 인재(이를 객경客卿이라 불렀다)들을 추방하라는 축객령逐客令을 내린다.

진나라는 기원전 7세기 목공 때부터 개방적인 인재정책을 실행해 많은 외국 인재들이 건너와 진나라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

목공은 인재를 기용하되 국적, 민족, 신분, 나이를 따지지 않는 이른바 ‘사불문四不問’의 인재 기용책을 마련함으로써 당시 다른 제후국보다 훨씬 앞선 인재정책을 수립하게 됐고 이것이 진나라의 비약적인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됐다.

크면 클수록 작은 것 포용해야
그런데 진왕 때 터진 정국사건이 반 천년 가까이 별 문제없이 시행돼 온 진나라의 인재정책을 뒤흔들었던 것이다. 축객령에 따라 추방될 외국 출신의 인재들은 너나할 것 없이 공포에 떨었다.

조국을 떠나 먼 외국에서 출세할 기회를 간신히 잡았는데 느닷없이 이곳을 떠나라는 명이 떨어졌으니 말이다. 이런 인재들 중에 훗날 진시황의 최측근이 되는 초나라 출신의 이사가 포함돼 있었다.

고심 끝에 이사는 진왕에게 한편의 글을 올렸다. 이렇게 해서 저 유명한 ‘간축객령諫逐客令’이라는 천하의 명문이 탄생한다. <객경들을 내쫓으라는 명령에 관해 드리는 말씀>이란 ‘간축객령’에서 이사는 진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강해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차별없이 인재들을 포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은 잠언을 인용하고 있다.(<사기> 권87 ‘이사열전’)

“태산은 단 한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클 수 있는 것이며 강과 바다는 자잘한 물줄기를 가리지 않았기에 그렇게 깊을 수 있는 것입니다.”(태산불양토양泰山不讓土壤, 고능성기대故能成其大 ;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 고능취기심故能就其深)

아무리 큰 사물이라도 작고 미미한 것이 모여서 이뤄지는 것이므로 크면 클수록 작은 것을 포용해야 한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는 절묘한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인재도 이와 같아서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재주를 가졌더라도 내치지 말고 포용해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비유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사는 인재를 내치는 것은 “무기를 적에게 빌려주고 식량을 도적에게 먹으라고 주는 것”(자구병이뢰도량藉寇兵而賚盜糧)이나 마찬가지라며 자신의 주장을 강조했다.

진왕은 이사가 올린 ‘간축객서’를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즉시 축객령을 취소하는 한편 이사를 불러 중책을 맡기기에 이른다. 이사는 진왕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진나라의 천하통일에 큰 역할을 해냈다.

새로운 출발은 통합을 전제로 하며 통합은 다양한 인재에 대한 담대한 포용력을 요구한다. 이제 현정권이 이를 실천할 수 있느냐 여부가 실험대에 올랐다. 역사가 던지는 지혜의 메시지에 귀 기울일 일이다.

김영수 센터장
영광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