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담론보다 중요한 처신과 수양

■ <사기史記>의 고사성어로 통찰하는 삶의 지혜 ⑪ - 수신修身의 명구들

2013-05-16     영광21

이제 우리 사회는 거대 담론보다는 개개인의 처신과 수양을 더 강조하고 있다. 거대 담론에 묻혀 소홀히 했던 윤리와 도덕의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하게 불거져 나오는 상황을 보자면 당연한 과정이라 하겠다.

<악부시집>(상화가사 7, 군자행)을 보면 ‘과전이하瓜田李下’라는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말 그대로 ‘오이밭, 배나무 밑’이란 뜻이다. ‘오이밭에서 신발끈 매지 말고 배나무 밑에서 갓끈 매지 말라’는 속담의 출전이다. 원문을 풀이하자면 “군자는 미연에 방지한다. 의심을 살만한 곳에는 처하지 않는다. 오이밭에서는 신발을 신지 않고 배나무 밑에서는 의관을 정제하지 않는다”가 된다.

요컨대 의심을 살만한 장소에는 가지 말고 또 그런 행동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이밭과 배나무 밑은 의심을 사기 쉬운 장소가 되는 셈이다.

옛 사람들은 이렇듯 처신에 있는 주의, 없는 주의를 다 기울였다.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는 않으나 충분히 새겨 둘만한 대목이다. 공직자나 사회 지도층의 처신이 워낙 형편없는 세상이라 더 그렇다.

수신에 앞서 처신에 주의하라는 말인데 이와 관련해 굴원은 좀 더 엄격한 자세를 요구한다.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모자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권84 굴원가생열전)

오이밭이나 배나무 밑은 사람의 눈에 쉬이 띨 수 있기에 당연히 조심해야 하겠지만 굴원은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자세를 바로 잡으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수신보다 처신이 더 어렵다는 생각마저 든다. 별 생각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상황이 일상에서는 더 많이 더 쉽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마음)을 가다듬는 수신은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개개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본자세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가장 어려운 기본기가 돼 버렸다.

금전만능이나 무조건 1등하고 이기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승자독식 등과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가치관으로 인해 세태와 민심이 좋지 않은 쪽으로 많이 변질돼 개인의 윤리와 도덕이 한쪽으로 밀려난 탓이다.

수신에도 단계가 있고 수준이 있다면 그 첫걸음은 무엇이 될까? 사마천은 ‘벌공긍능伐功矜能’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벌공긍능이란 ‘공을 자랑하고 유능함을 떠벌린다’는 뜻이다. 사마천의 말을 들어보자. “법을 받들고 이치에 따르는 벼슬아치는 공을 자랑하지 않고 유능함을 떠벌리지도 않는다. 백성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으며 잘못도 범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 <순리열전>을 짓는다.”(권130 태사공자서)

이 단계의 수신이 된 사람은 ‘불긍기능不肯其能, 수벌기덕羞伐其德’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유능함을 자랑하지도 않았고그 덕을 떠벌리는 것을 부끄러워했다.”(권124 유협열전)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노자>의 몇 대목이 눈길을 끈다.

“불자현고명不自見故明 ; 불자시고창不自是故彰. 불자벌고유공不自伐故有功 ; 불자긍고유장不自矜故有長.”(22장) “스스로 드러나지 않으므로 오히려 밝게 빛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 않기에 도리어 공이 두드러진다.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공이 두드러지고 자기의 능력을 떠벌리지 않기에 도리어 오래 갈 수가 있다.”

“자벌자무공自伐者無功, 자긍자무장自矜者無長.”(24장) “스스로를 떠벌리는 자는 오히려 공이 없고, 자신을 과시하는 자는 오래가지 못한다.”

“상덕부덕上德不德, 시이유덕是以有德 ; 하덕부실덕下德不失德, 시이무덕是以無德.”(38장) 덕이 뛰어난 사람은 덕이 있다고 내세우지 않으며 덕이 아주 없는 사람은 덕을 떠벌리는 처음부터 덕이 없는 사람이다.”

따라서 이 단계의 수신이 가능한 사람의 언행은 “말에 믿음이 있고 행동에는 결과가 있고 한번 약속한 일을 반드시 성의를 다해 실천하고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남에게 닥친 위험 속으로 뛰어든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유협열전>)

사마천은 <이장군열전>에서 공자의 말을 빌려 “그 몸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알아서 행동하지만 그 몸이 바르지 못하면 명령해도 따르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 한몸의 수신 여부가 타인의 행동과 동기부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이다.

“부귀자송인이재富貴者送人以財, 인인자송인이언仁人者送人以言”이라고 했다.(권47 공자세가) “돈 많은 자는 재물로 사람을 대하고 어질고 덕있는 사람은 좋은 말로 사람을 대한다”는 말이다. 처신과 수신의 출발점은 ‘좋은 말’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말’이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교훈으로 앞의 재물과 연계시켜 보자면 ‘사상의 재물’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글을 써놓고 며칠 뒤 온 나라를 뒤덮는 기가 막힌 뉴스가 터졌다. 사마천은 “나라의 안위는 어떤 정책을 내는가에 있고 흥망은 어떤 사람을 쓰는가에 달려 있다”고 했다(권112 평진후주보열전). 정말이지 구구절절 가슴을 파고든다. 그런 자를 기용한 리더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말이다.

나라를 발전시키는데는 열 충신으로도 모자라지만 나라를 망치는 데는 간신 하나만 족하다고 했다.
모두들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다. 안팎으로 나라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김영수 센터장 영광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