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곧 공부다

■ 사마천의 <사기>의 명구를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 ⑮ - <사기> 속 유명인들의 공부법

2013-06-13     영광21

과거에는 공부라는 것이 따로 있지 않았다. 책읽기, 즉 독서가 곧 공부였다.
책을 좋아했던 옛 현자들의 독서법을 잘 살펴보면 몇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는 독서는 기본이고 읽고 싶은 책은 돈을 모아서라도 반드시 사는 매서買書가 뒤따른다.

돈이 없거나 살 수 없으면 빌려서라도 기어이 읽는 차서借書가 있고 빌릴 수도 없으면 그 책을 갖고 있는 곳이나 사람을 찾아 보고 오는 방서訪書도 있다. 원하는 책, 좋아 하는 책을 고이 간직하는 장서藏書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독서법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다. 이런 독서법을 바탕으로 책을 쓰는 저서著書가 있고 사지도 빌리지도 못하는 책은 방서해 베껴오는 초서抄書도 있다.

독서 때문에 이혼당한 강태공
지금 사람들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독서는 지식의 원천이자 지혜의 샘이었고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었다. 독서가 곧 공부다. 독서 따로 공부 따로 라고 여기는 지금의 교육현실은 여러 면에서 반성할 점들이 많다.

<사기>를 읽다보면 독서와 관련한 명인들의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제법 많이 나온다. 낚시꾼의 대명사인 강태공은 실존 인물이었다.

그는 60이 넘은 나이에 주 문왕을 만나 문왕의 스승이 되었고 이어 문왕의 아들인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 왕조를 건립하는데 1등공신이 됐다. 야사에는 강태공이 60이 넘도록 변변한 직업없이 밥벌이를 못하자 아내가 그를 버렸다고 한다.

아내가 강태공을 버린 이유는 허구한 날 책만 들여다보았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강태공은 독서 때문에 이혼을 당한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강태공이 출세해 봉지로 받은 제나라로 가고 있는데 어떤 여인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강태공이 누군가 싶어 걸음을 멈추고 그 여인을 자세히 보았더니 다름 아닌 자신을 버린 아내였다. 아내는 자신의 잘못을 빌며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없냐고 했다.

그러자 강태공은 시종에게 물을 한사발 가져오게 해서는 그 물을 땅바닥에 뿌리며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며 면박을 줬다. 이것이 그 유명한 ‘복수불반覆水不返’이란 사자성어이다. 지난 과거는 돌이킬 수 없음을 비유하는 말이자 공부만 하는 남편을 알아주지 못했던 아내를 조롱하는 명구이기도 하다.

분서갱유로 악명 떨친 진시황
세계적으로 유명한 진시황은 흔히 독재자,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책을 태우고 유학자들을 땅에 파묻은 ‘분서갱유’라는 사상탄압으로 2천년 넘게 악명을 떨쳤다. 하지만 진시황에 관한 <사기> 기록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가 상당한 독서광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언젠가 진시황은 법가사상의 집대성자인 한비자가 쓴 글을 읽고는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며 “이 글을 쓴 사람을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했다.

한비자는 법가사상을 대표하는 저술이자 명문으로 이름나 있는데 진시황이 이를 읽고 그 진수를 알았으니 그의 독서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지 않을까.

한권의 책을 깊게 연구해 일가를 이룬 인물도 있다. 장량은 젊은 날 도망자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신비한 노인을 만나 <태공병법>이란 책을 얻는다.

장량은 늘 이 책을 들고 다니며 읽고 또 읽어 당대 최고의 전략가로 거듭나게 된다.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천리 밖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최고의 전략전술을 구사했던 장량의 재능이 크게 작용했다.
방대하고 심오한 책은 평생을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장량의 공부법은 잘 보여준다.

어느 공부도 끝을 보지 못한 항우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 크게 실패한 사람도 있다.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는다’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는 무슨 공부든 끝을 보지 못했다고 사마천은 기록하고 있다.
숙부 항량이 항우에게 글을 가르쳤더니 중도에 그만 두었다. 까닭을 묻자 항우는 “이름만 알면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검술을 가르쳤는데 이 역시 중도에 포기했다. 이유를 묻는 숙부에게 항우는 “한 사람만 상대할 정도면 됐다”고 대답하면서 자신은 만인을 상대할 수 있는 병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숙부는 이런 항우를 기특하게 생각하며 병법을 가르쳤는데 이마저도 중도에 그만 뒀다.
훗날 천하의 패권을 놓고 항우는 유방과 경쟁을 벌인다. 항우는 대부분의 싸움에서 유방을 압도했다. 그럼에도 항우는 유방에게 끝내 패하고 만다.

마지막 한번의 패배를 항우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재기를 권하는 주위의 간곡한 청도 뿌리친 채 항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무슨 공부든 끝장을 보지 못했던 항우의 공부법이 결국은 한번의 패배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포기하는 결말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가 삶의 지혜를 축적해 많은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수단이 아니라 점수와 성적을 높여서 타인을 누르면 부귀를 독차지하는 천박한 목적과 수단으로 변질됐다.

초등학교 때 읽는 독서량이 평생 읽는 독서량의 90%를 차지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통계도 우리 현실이다. 한창 많은 책을 접하고 읽어야 할 중·고등학교 시절에 책을 읽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부모들이 태반이다.

가장 예민한 시기에 좋은 책을 통해 고민을 극복하고 꿈과 이상을 다져나가지는 못할망정 성적 올리기에 몰입해 남을 꺾기만 하면 된다는 몰가치적 교육 풍토가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부도 독서도 다 병들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독서가 곧 공부요 공부가 곧 독서였던 옛 현자들의 독서법은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김영수 센터장
영광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