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통치의 함수관계

■ 사마천의 <사기>의 명구를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 18 - 법의 정신

2013-07-04     영광21

사마천은 법이 통치의 수단이나 도구가 되긴 하지만 인간의 선악과 공직의 청탁을 가늠하거나 결정하는 근본적인 도구는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 유력한 근거로 치밀한 법망을 갖추고도 통치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했던 진秦나라의 빠른 멸망과 가혹하고 치밀한 법망을 가지고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던 한 무제의 통치사례를 거론했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법령이 정치의 도구이기는 하나 백성들의 선악과 청탁을 다스리는 근본적인 제도는 아니다. 과거 천하의 법망이 그 어느 때보다 치밀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백성들의 간교함과 거짓은 도리어 더 악랄해졌다.

법에 걸리는 관리들과 법망에서 빠져나가려는 백성들과의 혼란이 손쓸 수 없을 만큼 극에 달하자 결국 관리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백성들은 법망을 뚫어 나라를 망할 지경으로 끌고 갔다. 당시 관리들은 타는 불은 그대로 둔 채 끓는 물만 식히려는 방식의 정치를 했으니 준엄하고 혹독한 수단을 쓰지 않고 어찌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권122 <혹리열전>)

다음으로는 법의 기능과 이를 집행하는 관리들의 바른 자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법령이란 백성을 선도하기 위함이고 형벌이란 간교한 자를 처단하기 위함이다. 법문과 집행이 잘 갖춰져 있지 않으면 착한 백성들은 두려워 한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잘 수양한 사람이 관직에 오르면 문란한 적이 없다. 직분을 다하고 이치를 따르는 것 또한 다스림이라 할 수 있다. 어찌 위엄만으로 되겠는가?”(권119 <순리열전> 중 사마천의 논평)

법집행이 불명확하면 백성 힘들어
법을 집행하는 공직자가 사사로운 욕심에 물들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법을 떠받들면 법의 근본적인 기능이 제대로 행사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컨대 공평하게 법을 집행하려는 관리의 의지와 자기수양이 전제된다면 법은 얼마든지 너그러워질 수도 있다는 논리다.

사마천의 법 정신의 요점은 법 조문 자체의 엄격함이나 치밀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집행하는 공직자의 처신이 법 조문을 가혹하게도 너그럽게도 만들 수 있다는데 있다.

법을 집행하는 자가 법을 지킬 의지가 없다면 법 조문은 아무리 많고 지독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나라의 법전을 철저하게 정비한 개혁가 상앙은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위에서 법을 어기기 때문이다”(<상군열전>)라고 일갈했던 것이다.

법은 강제력이지만 그것이 철두철미 공평무사하게 집행된다면 통치와 백성들의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법도 어디까지나 인간 사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완벽에 가까운 법체계를 갖추고도 진나라 일찍 망한 가장 큰 원인으로 ‘막힌 언로’를 꼽았다.

요컨대 법을 집행하는 자가 백성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저 가혹하게만 굴었다는 것인데 이는 법 집행에 있어서 유연한 융통성의 필요성을 함께 지적한 것이다.
<순자> ‘군도君道’에 보면 “어지럽히는 군주는 있어도 어지러운 나라는 없다. (잘) 다스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잘) 다스리는 법은 없다”는 대목이 눈에 띤다.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를 갖춰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으면 법과 제도는 유명무실해 진다.

법과 인간의 함수관계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나라는 거의 완벽한 법과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진시황은 그것을 더욱 확대하고 여기에 각종 문물제도를 통일하는 놀라운 시스템을 창안했다.
하지만 진나라는 20년을 못 버티고 단명했다. 법과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어지러운 나라는 없다. 못난 리더가 자리에 앉아 제도와 법을 어지럽히고,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자기들 멋대로 법을 유린하기 때문이다. 법을 가장 잘 아는 자들이 법을 가장 많이 어기고 악용하는 까닭도 그 사람의 법의식이 삐뚤어져 있고 사사로운 욕심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는 3권 상호 견제로 확보
프랑스의 몽테스키외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법의 정신>(1748)을 완성했다. 그는 영국 헌법의 원리를 상세히 분석해 ‘법을 연구하자면 선험적인 이론으로서는 안되며 우리들이 생활하고 있는 구체적 현실의 상황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해 개인의 자유는 국가권력이 사법 ·입법·행정의 삼권으로 나뉘어 서로 규제·견제함으로써 비로소 확보된다고 하는 그의 삼권분립론은 미국 독립 등 전세계에 영향을 줬고 19세기 자유주의가 옹호하게 되는 기본적 자유의 규정에 공헌했다.

사마천은 몽테스키외보다 약 2천년 앞선 인물로 군주의 권력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체제에서 살았다.
따라서 개인의 자유나 삼권분립과 같은 근대적 법 정신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구체적 현실의 상황에서 출발하는 법의 정신은, 법의 집행에 있어서 공익우선과 지배층의 솔선수범 즉 백성의 삶을 우선할 줄 아는 집행자의 수양과 처신을 강조한 사마천의 법의 정신은 본질적인 면에서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서양과 다른 이념과 문화를 가지고 수천년 동안 살아온 동양의 법 의식을 봉건적이라 해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작동하고 있는 나름의 법 정신을 발견해 참조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사마천이 <사기> 곳곳에서 보여주는 법에 관한 소중한 인식들이 그래서 귀한 것이다.

 

김영수 센터장
영광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