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베푸는 삶의 춤꾼 공선생님의 1주기를 맞으며

2013-07-18     영광21


恨(한)이 맺히면
춤이 되나요
옷소매 두어번 걷어
주먹을 불끈쥐면
왕방울 두눈에 맺히시던
그 지독스런 恨이여


지난해 7월9일에 영면하시고 12일에 영결식을 치룬 공옥진 여사님이 더욱 그리운 것은 그 분의 못다한 한이 아직도 세상의 곳곳에 많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날 아침 갑자기 장례위원장을 맡아 문화인장으로 영결식을 치루기도 했다. 예고없는 이별길이었지만 국내의 언론사, 방송사 등은 사전에 연락이라도 하고 가신 것처럼 순식간에 영광으로 모여들었다.
문상객들 또한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4일 동안 밀어닥쳤으니 그분의 살아생전 삶의 방식이 박수를 받을 만도 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장례식장을 와본 사람은 이야기를 그칠 줄 모른다.

‘그 정도의 명성이라면 이뤄놓은 재산 또한 많았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들 하지만 모으는 것보다 베푸는 것에만 관심을 두시다 보니 통장은 항상 깨끗했다고 한다.


이제 그 한까지 훌쩍 가슴에 안고
승천의 길 들었으니
이 땅엔 이젠 무엇이 남겠소, 무엇이 남겠소

눈물만 남겨두고 가시는 님
손흔들 수 밖에 없습니다
안녕히, 안녕히 가십시오


필자가 눈물로 읽었던 조시의 마지막처럼 눈물만 남겨두고 가셨다.
가신지 49일이 되던 날은 무척이나 더웠다. 그러나 무등산 원효사에는 그분을 흠모하던 많은 분들이 모여 원앙생 원앙생을 외웠다.

당신이 내 엄마여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너무 늦게 사랑해서 미안합니다
목 메이게 서럽고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당신을 꼭 안아보고 싶습니다

무남독녀 은희씨가 서럽게 받치는 ‘못다 쓴 편지’의 낭송에서 나는 지금도 그분의 한이, 한이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삶을 역설하셨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시던 날도 비가 내렸는데 1년이 지나니 그때의 비가 또 내리고 있다.
<시 - 恨(한) 정형택>

 

 

 

정형택
영광문화원장